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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국수 한 그릇의 값어치

삼각지 국숫집 배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5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도 그런 것 같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집무실 근처에 있던 한 국수집에 들른 일이 있었다. 언론들은 곧 이 국수집이 10년 만에 한 번씩 언론에 주목을 받은 사실을 소환해내었다.

 

 

1998년 겨울 이른 오전, 초라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이 서울 삼각지에 있는 국숫집에 들어왔다. 가게 주인 배 할머니는 한눈에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차렸지만, 말없이 당시 2,000원 하던 온국수 한 그릇을 말아줬다. 그가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자 다시 한 그릇을 더 줬다. 식사를 마친 남성은 '냉수 한 그릇 떠달라'고 했고, 배 할머니가 물을 떠 오기 전 달아났다. 그러자 배 할머니는 가게를 나와 앞만 보고 뛰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또 말해주었다.

"뛰지 말어. 넘어져 다칠라!"

“배고프면 담에 또 와!”​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묻혀질 뻔했었다. 그러다가 10년쯤 지난 뒤에 한 방송사에 제보편지가 왔다. 국수를 먹고 달아난 남성은 남미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는데 10년 뒤에 마침 이 국숫집이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것을 나라 밖에서 보고는 해당 프로그램 PD에게 편지를 보냈단다. 당시 자신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고 아내도 떠나버린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일대에서 여러 식당에 끼니를 구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세상을 원망하며 마지막으로 국수집을 들어갔는데, 당시 주인 할머니로부터 얻어먹은 국수 한 그릇과 마지막에 해주신 말로 삶의 희망과 용기를 받아 다시 재기하게 되었다고 밝힌 것이다.

 

이 일화는 곧 신문에도 알려져 여러 군데에 실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초 윤석열 대통령이 점심시간에 찾아와서 5천 원짜리 국수로 식사하고 갔다는 소식이 알려져 다시 세상에 조명된 것이다.​

 

필자는 이 소식을 보고는 다른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실화가 아니라 동화이고, 음식도 삼각지 배 할머니 집에서 말아준 온국수가 아니라 일본식의 메밀우동이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동화였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 앞의 북해정(北海亭)이라는 옥호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예!"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일본의 명작동화 ‘우동 한 그릇’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찾아와 우동 1인분을 시키는 엄마, 눈에 띄게 많이 주면 자존심이 상할까 봐 몰래 반을 더 주는 주인장, 해마다 이들 삼모자가 눈에 띄지 않게 더 주는 우동을 맛있게 먹고는 드디어 14년 뒤 이들이 잘 성장해 당당히 3인분을 시켜 먹고 나간다는 이야기.

 

구리 료헤이(栗良平)라는 일본의 한 동화작가가 1988년에 발표한 이 동화는, 이듬해인 1989년 2월 열린 일본 114회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의원이 당시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에게 전문을 읽어 주어 순식간에 일본 전체에 큰 인기를 몰고 왔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많은 감동을 준 동화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으로 비롯된 이 실화와 동화는, 현실 속에서 다른 길을 걷는다. 많은 감동을 준 동화 작가는 뜻밖의 행보를 보인다. 이 동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일대 붐을 이루던 중, 작가 구리 료헤이의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삿포로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는 그의 학력이 거짓으로 드러났고, 사가현에서 금품사기를 친 것이 드러나 자취를 감춘다.

 

1994년부터 98년까지는 한 가정주부를 유혹해서 각지를 전전하며 사기를 치는 등 사기행각이 드러난다. 그 때문에 이 ‘우동 한 그릇’은 적어도 일본 내에서는 “위대한 사기 동화”로 전락한 셈이 되었고, 그것을 잘 모르는 외국에서는 여전히 감동의 동화로 남게 된다. 물론 이 동화의 작가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반면 할머니의 국수 한 그릇은 시대를 거치며 거듭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일본의 우동 한 그릇은 머릿속에서 태어난 상상이지만, 삼각지의 국수 한 그릇은 할머니의 아픈 삶에서 태어난,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젊은 날 잘 나가던 남편이 어린 4남매를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뜨자 연탄불로 자살을 하려 했다. 그런데 옆집 아줌마의 권유로 다시 살아가기로 한 할머니는 연탄불로 살 방법이 무엇일까 하다가 연탄불에 다시다 국물을 내어 국수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장사가 잘되던 중에 다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심장마비로 잃고 실의에 빠져 가게 문을 닫으려 한다. 그러다가 단골들이 간청하는 바람에 다시 영업을 시작해서는 여태껏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물을 주는 국숫집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동화와 실화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인가? 일본의 우동 한 그릇 동화로 일본뿐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도 일본인들의 따뜻하고 보이지 않는 배려심에 감동하게 되었지만, 허구로 상상의 배려를 내세우다 동화의 작가는 실제 삶을 망친 것이라면, 우리 삼각지 국수 한 그릇의 이야기는 오히려 실화이기에 그보다 더 실제적인 배려라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도 이를 의지와 인정으로 극복하고 이를 다른 이들의 삶을 도와주는 것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인데. 이런 이야기는 사실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모르거나 그 마음을 다 받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필자의 기억에 몇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지난해 초에 홍대 앞에서 할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비를 벌며 사는 한 소년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남동생을 치킨집 앞으로 데리고는 왔지만, 돈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것을 본 치킨점주가 이들에게 치킨을 공짜로 주고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치킨을 대접했는데 그 소식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전해지자 이곳에 주문이 밀려들어 일시 문을 닫아야 했다는 것이 그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하남의 편의점에서 어린 소년이 먹고 싶은 것이 많아 잔뜩 골랐는데 돈이 모자라 몇 개를 빼고 계산해도 역시 돈이 모자라 난감한 상횡이었다. 그때 뒤에서 기다리던 누나뻘 되는 여학생이 모자란 돈을 대신 내주며 추가로 다른 것도 더 가져가게 했다는 이야기도 그 하나다.

 

지난해 2월 말 전주의 한 마트에서는 손님이 소주 2병과 번개탄을 사 갔는데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여주인이 경찰의 도움으로 이 손님을 찾아내어 자살하려는 마음을 돌리게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기적과 사랑의 이야기는 곧 사람들의 기억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 곧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우리의 삶이 각박하다고만 한다.​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본 동화 우동 한 그릇만큼 뜨거운 감동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삼각지의 국수 한 그릇의 주인공 할머니가 실현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주목하거나 기억을 해주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로 연결되는 일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10여 년 전 알려졌다가 곧 잊고 있었던 국수집 미담이 대통령의 점심 식사로 다시 소환되어 우리들의 빈 가슴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 반갑다. 바로 이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자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치라는 것도 이런 것을 위해 있어야 하리라.

 

우리 주위에는 어렵다고 삶을 포기하려고 하거나 남의 것에 눈을 돌리거나 남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 자세가 여전히 있다. 그것보다는 삶의 어려움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하고 나아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그렇게 해서 함께 따뜻한 사회로 가는 그런 마음들이 이번 옛집 국수 미담이 부활하듯이 사람들 가슴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 이번에는 잊어버리지 않고 다른 사랑의 씨앗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지난달 삼각지 옛집 국숫집을 가보니 5천 원짜리 온국수는 여전히 시원한 맛을 내고 있었고 소문이 나서인지 더 많은 분이 꾸준히 찾고 있었다. 어쩌면 "대통령이 다녀간 식당이래!"라고 해서 오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망각의 동물인 만큼 이 배 할머니의 사랑과 배려의 마음은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이제, 대통령이 다녀가서 좋은 곳이 아니라 착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살린 식당이어서 좋은 곳이라면, 우리는 배 할머니의 사랑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고 이를 되살려 이어갔으면 한다. 그것이 아마도 대통령이 이 국숫집을 찾아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간 진정한 본뜻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