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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의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19. 말뚝이 근본 자랑

[이달균 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26]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장구경 온 사람들아

  소인 근본 들어보소

 

나의 칠팔구대조께옵서는 남병사를 지내옵고, 사오륙대조께옵서는 평양감사 마다하고 알성급제 도장원에 승지참판 지냈다오. 아서라, 구라치기 지겨우니 뚝 잘라 말하리다. 고향은 경상도라 무뚝뚝한 말뽄새에 알고도 짐짓 몰라 ‘시침 뚝!’이 자랑이라, 갓끈 긴 사장님아 가방끈 긴 시장님아, 다리 밑이 고향이긴 매양 일반 아니던가. 항렬자는 뚝자 돌림, 일가친척 일러볼까. 새부대에 새로 담는 새뚝이는 어떠하며 쓰러지면 일어나는 오뚝이는 어떠한가. 섬섬옥수 담근 간장, 장맛보다 뚝배기라 박경리 태어난 곳 이름하여 ‘뚝지먼당’

 

  어떻소, 말뚝이 근본

  이만하면 쓸만하요?

 

 

 

 

<해설>

지금은 이런 어른들 잘 안 계시지만 10년 전만 해도 어디 가면 “자네 고향이 어딘가? 성은 무엇이며 본은 어딘가?”, 좀 더 점잖은 어른들은 “춘부장 연세는 얼마이고, 안항은 몇인고?”하고 묻기도 했다.

 

이런 물음에 잘 대답하지 못하면 가정 교육을 잘 못 받은 것으로 인정되고 만다. 성씨나 본 정도는 대부분 알 것이고, 춘부장도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임을 모르지 않는데, 안항(雁行)이란 말에선 말문이 막힐 수도 있다. 그 뜻은 기러기의 행렬, 곧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하늘에 기러기 떠 갈 때 줄지어 가는 모습으로 형제를 비유한 말인데, 요즘 이렇게 누가 물으시면 참 대책 없는 어른이 되고 만다.

 

해설 서두에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은 예전 근본에 관해 묻는 어른들 관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가 근본 물으면 그럴듯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말뚝이 근본을 물으니 그 대답이 참 난감하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우리도 조상님이 삭탈관직당하고, 억울한 누명만 쓰지 않았으면 육간대청 떵떵 울리는 양반으로 살았을 것인데….” 하는 지나가는 푸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다 잊고 말았다.

 

여보게, 여보시게들, 잘 난 어르신들! 제발 말뚝이놈 근본 묻지 마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배웠는데, 알고 보니 사람 위에 사람 있고, 그 위에 또 사람 있음을 이제야 알았소. 철들자 노망한다고 이제야 알았으니 말문을 닫아야겠소. 청문회에서 몰랐던, 사람 위에 또 사람 켜켜이 층층이 쌓여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