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 해설 > 이제 하직 막죽*이다. 언제나 끝에 이르면 미진한 것에 눈길이 간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다 못한 얘기도 많다. 하지만 재능이 그 정도이니 어쩔 수 없다. 광대놀이 끝나고 파장이 되면 그동안 놀았던 신명은 찾을 길 없고, 집에 갈 걱정,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달아올랐던 취기도 차츰 가라앉고, 달도 저만치 이지러진다. 연재를 마치면서 나도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구부려 앉은 무릎이 아프다. 고성오광대를 주제로 한 시집 《말뚝이 가라사대》, 그 다섯 과장을 허위허위 달려오다 보니 숨은 턱에 차고 발목은 저려온다.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를 혼용하여 오십 네 수로 엮은 시조 작품에 해설이랍시고 붙이다 보니 더러 허튼소리도 많았다. 이런 노래일수록 사설시조가 제격이란 생각으로 넋두리나 흥타령 등 중요한 부분은 사설시조로 구성했다. 사설시조란 앞말이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을 주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하직 막죽 가는 길에 소원이나 빌어주소 어화넘자 어화넘자 조심넘자 어화넘자 밀어라 땡겨라 어화넘자 이장님 면장님 군수님도 지전 한 장 꽂고 가소. 조롱박 벙거지 다 닳아가고 상두꾼 짚신 마련 시급하니. 어화넘자 어화넘자 탈바가지 벗어보소. 갑갑해서 지리 죽것다. 탈 쓰고 탈놀음 백날을 놀아도 말뚝이 누군지 문둥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몰라도 탈, 알아도 탈, 먼지 탈탈 털지 마라. 어화넘자 어화넘자 춤꾼도 구경꾼들도 목축이고 파장하자 < 해설 > 한참 광대놀이 빠져 있다 보니 벌써 밤이 찾아왔다. 몇 고개도 넘어야 하고, 집에 갈 일이 막막하다. 그래도 마지막을 보고 가야지. 어느덧 오광대 다섯 과장이 끝나고 맨 마지막 상여 나가면서 광대패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당을 휘돌아 간다. 에라 모르겠다. 구경꾼들도 꽹과리에 맞춰 뒤뚱뒤뚱 신명을 푼다. 어차피 놀이 속에 연출된 초상이니 상주도 백관도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오광대 상두꾼들 노잣돈은 있어야지. “어허, 거기 군수님 지전 한 장 걸어주소. 그래야 군의원도 걸고, 영천 아재도 걸고, 들기미 이씨도 걸 것 아니요” 니 한 장, 내 한 장 걸다 보니 제법 주렁주렁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불쌍하고 불쌍하다 이씨 부인이 불쌍하다 구박에 칠거지악에 며느리 시집 징그럽소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상봉이자 이별이라 영결종천 웬 말이요 타관 땅 노상객사가 타고난 사주던가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기약 없는 길이로다 저승서 다시 만나면 선배인가 선생인가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황천길 멀다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이요 함부로 나서지 마라 저승사자 잡아간다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친구 벗이 많다 해도 어느 누가 대신할까 길동무 그리도 없나 황톳재를 어이 넘나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산천초목은 젊어가고 이 내 청춘은 늙어간다 젊다고 유세를 마라, 자고 나니 황혼이다 < 해설 > 슬슬 오광대놀이 끝이 보이니 시원섭섭하다. 전래해 오는 노래들은 혼자 지은 것이 아니고 세월 거듭하면서 민중들 입에서 입으로 불리어 왔으니 민족의 정한이 잘 녹아 있다. 노랫말 또한 누가 불러도 어색하지 않게 정제되어 있다. 현대가 좋다고 해도 소리 단가인 ‘사철가’나 황진이 시조 넘어서는 시도 별반 없더라. 이런 상여 노래도 마을마다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망자(亡者)여, 하직하고 이승을 넘어가자 장가 못 가고 목메어 죽은 몽달귀신도 데려가고, 죽으나 사나 측간에 사는 측간 귀신도 거두어 가자. 빡빡 얽어라 곰보딱지 마마귀신도 데불고 가면 살아서 못 이룬 복록(福祿) 저승에서 누리리라 < 해설 > 이런 초상 치르고 나면 있는 집에선 으레 진혼굿을 한다. 저승 가지 못한 원혼 떠돌다 꿈에도 나타나고 되는 일도 없다고 무당은 한몫 잡을 궁리 한다. 하긴, 이런 풍습이 꼭 나쁘다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혼령 달래어 산 사람 마음 편하다면 댓가지에 요령 흔들고 작두 타면 또 어떠랴. 기실 이런 광경은 하나의 축제처럼 볼거리도 제공한다. 원혼이여, 가시려거든 몽달귀신, 측간귀신, 곰보딱지 얽게 하는 마마귀신도 데불고 가소. 두런두런 이런 중얼거림을 중장에 늘여 써 사설시조 한 수로 엮어 보았다.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돼지 잡고 전 부치니 동네잔치 따로 없다 원근 각설이들 떼 몰려 들어온다 조문은 나중 일이고 술 한 잔이 우선이다 발인이다 발인이야 소리꾼 괭쇠 소리 상주 백관 뒤따르고 꽃상여 길 떠나자 꽃잎은 난분분 지고 청산은 푸르러 온다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앞소리꾼 매김 따라 상두꾼 상여 어를 때 명정대(銘旌帶) 용머리 얹고 붉은 깃발 요란하다 < 해설 > 큰어미 죽고, 갓난아이 죽어 쑥대밭 된 마을이지만 그래도 형식은 갖춰야 하니 발인하고 상여 메어 묏자리라도 봐야지. 상주 백관은 곡하고, 여기저기 문상객도 찾아와 그런대로 상갓집 분위기는 난다. 아무리 원통한 죽음이라도 마냥 슬픈 울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복 누리고 오래 살다 떠난 사람이라 해도 호상(好喪)이란 없다. 이 상가는 어처구니없는 애사이니 문상객인들 뭐라 할 말 있겠는가. 어쩔거나. 이제 와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랴. 죽은 이는 죽어서 잊히고, 산자는 살아서 또 한 세상 사는 것을. 그래서 돼지도 잡고 전도 부친다. 이 가족에겐 슬픔이지만 각설이들에겐 거룩한 잔칫날이다. 이런 날 어찌 걸인이라고 내쫓을 수 있을 것인가. 지지고 볶은 음식일랑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잘 가소 훌훌 털고 다 잊고 떠나 가소 죄 있다면 이놈의 시상, 여자로 난 게 한 가지 죄요, 서방 복 못 타고난 게 두 번째 죄요, 대 이을 자식 바란 일이 죄라면 세 번째 죈데, 곰곰 생각하니 전부 사내가 엮고 사내가 비튼 여자의 운명이오. 다음 생엔 할멈이 맹글고 뚜르르 울리는 시상에 태어나 정승판서도 해 보고 꽃미남 기방에 불러 꺾고 만지고 빨아도 보소. 미련 둘 무엇도 없는 이승 하직 하구려 객사에 상주 없는 쓸쓸한 장례지만 발상(發喪) 고한 후에 만가(輓歌) 한 줄 지어 읽고 안동포 고운 수의하여 향나무관에 모시리다 < 해설 > 독자 여러분, 이제 슬슬 오광대놀이의 결말이 보입니다. 별사라니, 떠나는 이에게 보내는 노래를 부른다. 여자로 난 죄니 다음 세상에선 팔자나 바꿔 태어나라고, 그것도 마지막 고별사라고 고개 주억거리며 중얼댄다. 이 노래 같지 않은 노래가 혼령 위로하는 만가인가? 행랑에 든 엽전들 모두 긁어모아 안동포 수의 입히면 무엇하나. 향나무 관에 고이 누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여자의 생이 이리 비극만 있을까. 난봉꾼 남편 만나는 순간, 여자 팔자 이러구 마는 것이지. 이제 곧 발인하여 상여 나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꽃 같은 열여섯에 가마 타고 시집와서 시원찮은 백면서생 철철이 옷 해 입혀 곰 해 멕여 깔탈 많은 시부모 봉양으로 청춘 다 바친, 이 불쌍한 사람아. 아들 하나 못 낳은 죄인으로 장인 조르고 처남 졸라, 처가 전답 수십 마지기에 패물 궤짝이 둘, 머슴 다섯을 얻어 왔건만은 오입 밑천 노름 밑천으로 홀라당 다 까먹고, 그나마 있는 집 한 채는 일확천금 노다지에 속고 속아 빈털터리, 타관 객지에서 자식 죽이고 마누라 죽이고 돌아가 조상이며 처가 식구들 어이 볼거나. 철들자 노망든다고 다 내 죄다 내 죄야 < 해설 > 오광대놀이도 차츰 끝나가는가. 마누라 시신 곁에서 퍼질러 앉아 부르는 사설시조는 처량하다. 춤꾼이라면 이 모습을 어떤 춤으로 그려낼까. 기실 이런 장면을 두고 추는 양반춤은 없다. 그러니 이런 시편으로 영감 노래나 부를 수밖에. 늙어 어쩌다 본 아들 죽고, 조강지처까지 죽었으니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돌아보니 못난 인생이다. 자신이 그러하니 작은 어미 손에 죽은 마누라도 호의호식하며 살아보진 못했구나. 여자로 나서, 칠거지악이 가로막은 여자의 생이 어찌 벼슬도 못 해 본 시골 양반댁 마님인들 그리 편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어 어 어 어저저저! 큰어미 쭉 뻗는다 작은어미 발길질에 오매 큰어미 장승 넘어지듯 넘어가네. 벌벌 떨던 다리 멈추고 큰 한 숨, 이내 잠잠, 전주띠기 와이라노? 내 말 들리모 눈을 뜨소. 찬물 한 바가지 가져와라. 이기 뭣소! 살인 났다 살인 났어! 아이 죽고 큰어미 죽고 동네 사람들아 큰일 났다. 사람이 죽었다아아. 마당쇠야 마당쇠야 마님 돌아가셨다. 우짤고 우째야 될꼬 이 일을 다 우짤 것고 < 해설 > 가슴 아픈 사설시조다. 이런 글 쓰고 싶은 이가 누구 있을까만, 고성오광대 놀이에선 중요한 장면이다. 갈등의 최고조에 이르고 보니 광대놀이패나 구경꾼이나 모두 고통스럽다. 어쩔까. 어쩔거나. 작은 어미 아들 비명횡사하니 작은 어미 넋이 나간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나를 돌아서고, 지푸라기 하나 잡을 게 없다. 모르것다. 네 이 큰 어미년. 아이 죽고 내가 살면 무엇하나. 눈 뒤집혀 보이는 게 없다. 내 아들 죽인 큰 어미년 내 손에 죽어봐라. 머리끄댕이 잡을 끌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니 마른 장작 쓰러지듯 힘없이 꼬꾸라지고 만다. 파르르 다리가 떨더니 그만 조용하다. 조금 전 아이 죽은 마당이 더욱 썰렁해지며 살인 난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자식이 원수든가 시앗싸움 시작이다 놓기는 네가 놓아도 자식은 내 자식이니 못 준다, 못 주고말고. 독하다 큰어미년 피도 안 마른 아이 놓고 첫젖도 물리기 전에 가문 걱정, 제삿밥 묵을 걱정. 에라이, 쎄가 만발이 빠질 년아. 놓아라, 못 놓는다. 실갱이 실갱이 끝에 아차, 와르르! 간밤 꿈이 선몽이건만 호사다마란 말이 방정인가. 아뿔사 추락이라네 싸늘히 식어 버렸네 아가야 눈을 떠라 숨이 멎고 피가 멎었네 네 이년, 찢어 죽일 년, 독새 겉이 지독한 년, 내 자식 죽인 년이 지명에 죽을 것 같으냐? 깝데기 뱃겨 똥자루 삼아도 시원치 않고, 모가지 베어다 똥장군 마개로 써도 시원치 않다. 갈가리 찢어서 오장육부는 해동청 보라매 먹이로 주고, 사지는 발라서 승냥이 주고, 뼈다구는 빻아서 통시에 뿌려도 시원찮다. 이 큰어미년아. 죽어라 뒤져삐리라 내 발길에 황천 가거라 < 해설 > 드디어 시앗싸움 시작된다. 작은어미는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이고, 큰어미는 가문 대 이을 자식이다. 양보할 그 무엇도 없으니 죽느냐 사느냐 싸울 수밖에 없다. 첫젖도 물리기 전에 가문 큰어미는 가문 걱정, 제삿밥 묵을 걱정하고, 작은어미는 “쎄가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고추요! 생남(生男)이요! 어디 한번 얼러 보자 이마도 날 닮았고 코 큰 것도 날 닮았네 강풍에 날리어 왔나 땅에서 솟아났나 앞 못 보는 황봉사야 조심하고 조심하소 앞에는 고랑이고 뒤에는 돌부리 길한 뒤 호사다마라 명심하고 명심하소 나도 한번 얼러 보자 다칠라 조심하소 금자동아 옥자동아 금을 준들 너를 살까, 옥을 준들 너를 살까, 어허 둥둥 내 아들이야, 씨알도 굵고 고추도 크다. 우리 가문 대를 이어 산소도 돌보고 제사도 지내고 어허 둥둥 내 아들이야, 강풍 타고 내려왔나 하늬바람*에 날려왔나 간밤에 거꾸러진 용이 현몽이다 현몽이야 이 보시오 큰어미요 내 핏줄 이리 주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어찌 이리 매정하요 대 이을 생각 나중하고 내 아들 이리 주오 < 해설 > 그래, 원하던 대로 고추요, 아들이다, 경사로다 생남이로다. 영감은 아이 안아 들고 요모조모 이목구비 살펴본다. 커어! 영락없는 내 아들이로고. 공짜 좋아하는 이마도 훤하고, 여색 밝히는 코도 큰 것이 내 아들이 분명하구나. 큰어미도 아이 안고, 이 좋은 날, 단디 해라. 좋은 날 뒤에 호사다마라고 잘못하면 낭패당하니 진짜로 단디해라. 어제 꾼 꿈엔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