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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런던과 서울 사이 그 20년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의 중산층과 한국의 중산층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 런던에서 손님이 왔다. 한 사람이 아니라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 4명이 함께 왔다.

 

런던은 2002년 2월까지 내가 특파원으로 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운데 간간이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거기 사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였고 또 손님 가운데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젊은이도 있고 해서 그들로부터 잘 듣지 못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야 일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니 자세한 사정이나 느낀 점을 이를 정리해서 전해줄 그런 DNA가 없다고 할 것인데, 부인과 아이들은 다르지 않은가? 실제로 실생활에서 가장 많은 것을 부딪치고 느끼고 하는 쪽이니깐 그들의 증언(?)은 과연 생생하고 따끈따끈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딱 20년 세월의 차이를 말해주는 증언이다. 이들의 증언을 알기 쉽게 정리해보면

 

1. 한국인의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영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 대하는 태도가 친근하고, 말을 걸면 아주 반갑다는 듯이 친절하게 응대한다.

2. 아들들이 학교에 가면 영국 친구들이 가까이하고 싶어 하고 물어보고 싶어 한다. 물론 한류 아이돌 소식도 있지만 때로는 한국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한국의 역사 문화를 함께 많이 접하고 있는 것 같다.

3. 편의점이나 이런데 가도 한국인들에게 응대하는 눈빛이나 자세를 보면 그들이 이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 한국의 먹거리 옷 장신구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뉴 몰든에 한국상품을 파는 대형 할인매장 같은 것이 생겨 거기에 많은 영국인이 꼭 한국인과 상관없이 찾아온다.

5. 한국음식을 찾는 영국인이 많아졌다. 전에는 한국식당에는 한국인이 꼭 함께 왔는데 이제는 자기들끼리 오는 경우도 많고 주문도 다양하다.

6. 상대적으로 일본인들에 대한 태도나 인식, 평가가 우리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들이 그리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

 

대충 보면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영국 소식을 보통 주재특파원이나 순회특파원, 혹은 외신을 통해 주로 한류문제에 대한 반응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라 하겠는데, 실생활 주위에서 이렇게 우리 한국과 한국민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뜻밖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것은 20년 전 런던을 떠날 때 우리 가족이 알고 느꼈던 것과는 한참 다르기에, 그 20년 사이에 정말로 한국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그것이 우리들의 위상과 우리들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사실 영국을 나올 당시만 해도 일본이 문화나 경제면에서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고, 또 영국은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일본과의 유대라던가 친밀도가 훨씬 강하고 일본문화에 대한 과거 유럽인들의 동경심에 바탕을 둔 호감 같은 것이 깔려 있어 우리가 비교하기 어려운 격차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느 틈엔가 역전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분석을 잘할 것이지만 실제로 지난 20년 사이에 우리 국민의 소득이 높아져서.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평균임금 상승이 0.4%에 머물렀는데 우리는 44.5% 상승했다고 한다. 일본의 평균 임금은 5년 전 이미 한국에 역전된 데다 그 차이도 벌어져 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만큼 우리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기에 그 여유가 사회문화적인 생활의 윤택함이나 안락함으로 전환되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G7국가는 아니지만,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을 측정하는 PPP지수에 따르면 우리는 G6급이고, 일본은 G7, 이탈리아가 G8 순으로 나온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2018~19년께 미국 대비 70%를 넘어섰고, 이 수준이면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득으로 보는 실질적인 삶의 수준에서는 우리가 이탈리아나 일본을 앞질렀다는 것이 경제적인 지표로 입증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영국에서 우리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

 

영국에서 온 손님 덕에 이런 분석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이런 소식을 들은 것이 며칠 전인 지난 월요일의 광복절을 맞아 듣는 것은 더 큰 기쁨이었다. 우리가 일본 치하에서 고생했지만 일제통치로부터 벗어난 지 75년 뒤에 드디어 우리도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도 되는 상황으로 변했고 그것에는 정책의 문제, 시운(時運)의 도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각고의 노력을 한 결실이라고 스스로 대견해해도 크게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앞으로 미래에 대해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가 걱정이나 근심을 안 하면 문제겠지만 우리가 광복 이후 현대사의 아려움을 잘 헤쳐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 큰 걱정을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돈이 많아지고 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만큼 잘 사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보면 그러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어느 사회에서건 중산층이란 인식을 갖는 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웬만큼 괜찮게 사는 분들이 많다는 뜻이 될 터인데, 어느 경제신문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중산층은 최소 10억 원의 아파트, 연봉 6천만 원, 승용차는 2000cc 이상, 연 1회 나라 밖 여행 등을 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단다. 너무 경제적인 기준만이 언급되었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이 그쪽으로 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을 구분하는 기준은 돈이 아니라 도덕적인 관점이라고 한다. 일례로 영국 사람들의 중산층 기준은 1. 페어플레이를 하는 사람,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진 사람,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는 사람, 5. 불의ㆍ불평ㆍ불법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옥스퍼드 대학을 통해 나온 적이 있다.

 

물론 여론조사라는 것은 문항과 시점,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일률적으로 견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돈을 많이 벌고 안락함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보다 사람다운, 따뜻하고 골고루 잘 사는 사회가 진정으로 잘사는 사회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기준도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경제를 넘어서서 사회의 도덕과 예의, 준법정신 등등 정신적인 목표를 더 깊이 새기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년 만에 영국에서 온 손님들이 우리에게 문득 깨우쳐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