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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한 조각 구름과 같은 것

오대천 따라 걷기 2-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선재길 따라 한 시간쯤 걸어 낮 2시 10분에 오대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문이 잠겨 있다.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가 보다. 산장 앞쪽으로 자생식물 관찰원이 있다.

 

 

 

 

 

우리는 한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쉬기로 했다. 누군가가 가져온 과자와 간식거리 그리고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마침 은곡이 소리북을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판이 벌어졌다. 은곡은 판소리 장단은 물론 가요에 맞추어서도 북을 자유자재로 잘 친다. 봉평에 있는 우리 집에서 방림면 여우재 고개에 있는 은곡 집까지는 차로 40분 거리이다. 그는 막걸리를 주식으로 먹는데, 나에게 막걸리 먹으러 오라고 수시로 전화를 한다.

 

은곡이 북을 치고 나는 단가 <사철가>를 불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바뀌면서 모든 것은 흘러간다. 오대천도 흘러가고 봄날도 흘러간다. 이 봄과 함께 나의 인생도 흘러가니 조금은 슬프지 아니한가?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이어서 해당이 춘향가 중의 <갈까부다>를 사설과 함께 슬픈 가락으로 불렀다. 은곡이 심청가의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불렀다. 마지막으로 석영이 가요 <내 맘의 강물>을 불렀는데, 은곡이 북장단을 잘 맞추었다. 오대산장 앞 숲속에서 때 아닌 소리판이 벌어졌다.

 

                          ▲ 심청가를 부르는 은곡

 

우리는 한 시간 남짓을 쉰 뒤 낮 3시 20분에 오대산장을 출발했다. 선재길은 이제 6km 정도가 남았다. 오대산장을 출발하자마자 오대천을 건너가 하천의 왼쪽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때 나는 마침 은곡과 함께 걷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가는데 왼쪽에 풀밭으로 변해버린 밭이 나오고 폐가가 멀리 보인다.

 

은곡이 “저 집이 설봉이라는 내 친구가 살던 집이다”라고 말하면서 폐가를 가리킨다. 설봉의 부인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문화해설사를 했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혹시 그 부인의 이름이 최경애 아니었나요?”

 

 

이거야말로 정말 우연이다. 나는 설봉은 몰라도 최경애 보살은 잘 안다. 나는 50대 초반에 약 2년 동안 기독교 환경운동연대에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 불교환경연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최경애 보살(환경운동가로서 별명이 생태보살이었음)을 환경연대 일 때문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생태보살의 고향이 전주 한옥마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2012년에 봉평에 살기 시작한 뒤 어느 해에, 나는 선재길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사는 설봉 부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 설봉은 암 치료 뒤 요양 차 그 집에 살고 있었다. 화가였던 설봉은 월정사의 채마밭을 관리하면서 그림 그리기로 소일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설봉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았다. 설봉 장영철(1952~2021) 거사는 수묵화가였다. 그는 나이 50을 넘어서 오대산으로 들어와 산중 생활을 하며 선화두(禪話頭)와 소나무를 주제로 한 선화 100여 점을 그렸다. 말년에 <무문관 연창(無門關 緣唱)> 집필에 몰두하였는데, 유고집으로 출판되었다. 또한 판소리 <한암가>와 <태백산맥>의 대본을 집필하였다. 그가 판소리를 잘했다는 사실은 은곡에게서 들었다.

 

2022년 초에 지금은 경주에 사는 생태보살과 우연히 통화를 하였는데, 남편의 타계 소식을 그때 들었다. 생태보살은 남편의 유고집 《무문관 연창》을 나에게 택배로 보내주어 요즘 읽고 있다. 이 책은 975쪽이나 되는 무거운 불교 서적인데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이다. 이 책의 발문은 월정사에서 수행하는 현기스님이 다음과 같이 쓰셨다.

 

문수 보현이 어찌 말이 있으리오

문수는 그대 마음이고

보현은 그대 발걸음인데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발걸음을

<벽암록>이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장영철이 문수고 경애는 보현일세

둘이 만나서 화엄으로 한세상을 이루니

서로서로 선재동자가 되네

산 밖에 벗어나 보면

걸어가는 자취도 없네

걸어가는 길도 없어졌네

 

현기스님은 탄허스님의 상좌였는데, 내가 몇 년 전에 수원대의 교수님 몇 분과 월정사 주지스님이신 정념스님을 친견하러 방문했을 때 한번 뵌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현기스님 그리고 월정사의 교무국장 자현스님(월정사의 대표적인 학승. 박사 학위를 여섯 개나 가지고 있음)과 함께 월정사 경내 찻집 난다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한 적이 있다.

 

 

폐가 앞에는 지윤탑(智潤塔)이라고 쓴 돌탑이 서 있다. 답사기를 쓰면서 생태보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지윤’은 설봉 부친의 법호라고 한다. 아아, 허망하구나. 불과 10년도 안 되는 세월이 흘러갔는데, 집은 무너지고 인걸은 간데없고 돌탑만 남아 있다.

 

세월은 참으로 무상(無常)하기만 하다. 나에게도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갈 것이다. 조선 초의 함허스님 게송에 나오는 글귀처럼 “인생이란 하늘에서 일어나는 한 조각 구름과 같은 것 (生也一片浮雲起)”이 아닌가? 그렇다면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 구름에 실체가 없듯이, 나의 인생도 구름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공(空)이 아닐까?

 

선재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쪽 계곡물에 푸른 하늘이 비치어 파란색이 나타나 있다. 보기 드문 모습이다. 얼른 손말틀(휴대폰)로 사진을 찍었다. 하늘의 흰 구름이 물속에 보인다. 하늘의 구름은 실체가 없고 금방 사라지는데, 물속의 구름은 더욱 실체가 없다. 물속의 구름은 물결이 조금만 일어도 사라진다. 하늘 구름이 사라지면 당연히 물속 구름도 사라진다.

 

내가 일생을 살면서 추구했던 재물, 학식, 사랑, 명예는 물속의 구름과 흡사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반야심경을 압축한 네 글자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공(空)이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절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으면 부처가 되지 않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