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본풀이’는 무속의 제의인 ‘굿’에서 쓰는 낱말이다. 굿은 여러 ‘거리’로 이루어지는데, 거리마다 한 서낭님을 모시고 굿을 논다. 이를테면 ‘가망거리’에서는 가망서낭님을, ‘제석거리’에서는 제석서낭님을, ‘장군거리’에서는 장군서낭님을 모시고 논다. 굿거리의 짜임새는 대체로 맨 먼저 서낭님을 불러 모시고, 다음에 서낭님을 우러러 찬미하여 즐겁게 해 드리고, 이어서 굿을 벌인 단골의 청원을 서낭님께 올리고, 다음에는 단골의 청원에 서낭님이 내려 주시는 공수(가르침)를 받고, 마지막으로 서낭님을 보내 드리는 차례로 이루어진다. ‘본풀이’는 이런 굿거리의 차례에서, 서낭님을 불러 모시는 맨 처음 대목에 무당이 부르는 노래면서 이야기다. 노래에 담긴 이야기는 불러 모시고자 하는 서낭님이 어떻게 해서 서낭님의 몫을 하느님에게서 받았는지 그 처음과 끝을 알려 주는 것으로, 서낭님으로 몫을 받기까지 사람으로 태어나 살면서 겪어야 했던 온갖 서러움과 어려움을 빼어난 슬기와 놀라운 힘으로 이겨 낸 이야기다. 한마디로 ‘서낭 이야기’라 하겠는데, 한자말로 ‘신화’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런 ‘본풀이’는 굿에서 단골과 청중들에게, 이번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표준국어대사전》은 ‘겨레’를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을 ‘민족’ 앞에 끌어다 놓은 것은 참으로 헛된 짓이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지 않은 것이라면 애초에 ‘민족’이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알밤 같은 토박이말 ‘겨레’를 개똥 같은 한자말 ‘민족’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또 ‘민족’을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이라고 해 놓았다. 온통 한자말투성이어서 여느 사람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것을 그대로 토박이말로 뒤쳐 보면, ‘한곳에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같은 말과 삶으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된다. 얼마나 쉽고 또렷한가! 국어사전이 ‘겨레’를 ‘민족’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말 ‘겨레’는 버리고 남의 말 ‘민족’만 쓰면서, 남녘 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 하고 북녘 조선에서는 ‘조선민족’이라 한다. 같은 겨레이면서 저마다 다른 반쪽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반쪽인 저만을 끌어안는 이름을 만들어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이나 북이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 실리는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신정숙 선생님이 쓴 <적색과 아이보리>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여러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빛깔을 뜻하는 우리말이 한자말과 서양말에 밀려서 아주 자리를 내놓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겠느냐 하는 걱정이었지요. 우리 겨레가 스스로 만들어 쓰는 토박이말이 중국말에 일천오백 년, 일본말에 일백 년, 서양말에 팔십 년을 짓 밟혀 많이도 죽었지요. 그렇게 죽어 버린 우리말을 갈래에 따라 살펴보면 좋은 공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의 주검(시체)들을 어루만지며 서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 겨레의 삶을 뉘우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신 선생님이 '반물'이라는 낱말의 참뜻을 몰라서 애태운 것 때문입니다. 국어사전들이 '반물'을 올림말로 싣지도 않았으니 어디서 참뜻을 알아보겠습니까? 애를 태운 끝에 찾아낸 것이 반물은 '암키와색'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암키와든 수키와든 빛깔이야 다를 게 없으니, “반물색이라 하기보다 '기와색'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그랬지요? 그런데 그건 우리네 국어사전들이 모두 엉터리라서 그렇게 되었어요.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한여름 땡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더위를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줄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는 '소리'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떠들어 댔다. 이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소리'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마땅하다. 이럴 때에는 '한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거나 더욱 뜨거우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해야 올바른 우리말이 된다. 때가 마침 초복ㆍ중복ㆍ말복 사이라면 '복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또는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바짝 마른 땡볕더위를 '무더위'라고 떠드는 것은 틀림없이 '무더위'라는 낱말의 뜻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싶어서 가까이 만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무덥다'라는 낱말의 뜻을 물어보았다. 거의가 '매우 덥다', '몹시 덥다', '아주 덥다' 같은 껍데기 뜻풀이 대답뿐이었는데, '무'라는 앞가지에 무게를 두어서 '무섭게 덥다' 하는 놀라운 대답도 나왔다. 그러니까 '무더위'는 '무서운 더위'라는 것이다. 놀랍기는 놀라운 대답인데, 우리말의 신세가 이처럼 버림 받았는가 싶어서 놀라웠다. 국어사전들이 뜻풀이를 잘못해서 그런가 싶어 뒤적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먹거리'라는 낱말이 한때 제법 쓰였으나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춘 듯하다. 한때 제법 쓰인 데에도 어느 한 분의 애태움이 있었고, 자취를 감춘 말미에도 어느 한 분의 걱정이 있었음을 나는 안다. 나처럼 이런 속내를 아는 사람은, 말이라는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가 저절로 죽어 버린다는 통설을 곧이 믿기가 어려워진다. 말이라는 것이 더불어 쓰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약속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죽어 버리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반드시 맨 처음에는 누군가가 씨앗을 뿌려야 하고 마침내 누군가가 싹을 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먹거리'를 살리려 애태우던 분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 분이 '먹거리'라는 낱말을 살리려고 애를 태우던 시절의 한 고비를 잘 알고 있다. 내가 대학에 있던 1970년대 후반에 그분은 우리 대학으로 '먹거리'라는 낱말을 써도 좋으냐고 글을 보내 물어 왔다. 그분이 보낸 글에는 자신이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하며, 우리말에는 영어 'food'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싸잡는 낱말이 없어 찾아 헤맨 사연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먹거리'라는 낱말을 찾았으나,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표준국어대사전》은 '말씀'에다 "남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자기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다. 그러면서 뒤쪽 풀이의 보기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었다.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도 두 가지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지만, 뒤쪽 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과는 달리 "상대방을 높이어 자기의 말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풀이의 보기는 역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어 놓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말씀'이란 '남의 말'일 적에는 높여 이르는 것이 되고, '자기 말'일 적에는 낮추어 이르는 것이 된다. 같은 '말씀'이라도 남이 쓰면 '높임말'이 되지만, 자기가 쓰면 '낮춤말'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말씀'이란 남의 말이거나 자기 말이거나 늘 '높임말'일 뿐이다. 다만, 남의 말일 적에는 그 '말'을 높이느라 높임말이 되는 것이고, 자기 말일 적에는 '상대쪽' 사람을 높이느라 높임말 이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올바른 풀이일까? 당연히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이 올바른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만남'이라는 말은 알다시피 움직씨 '만나다'의 이름꼴로서, '만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만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는 '만나다'의 말밑(어원)을 밝혀 보아야 드러난다. '만나다'의 말밑은 (맛+나다), 곧 (맞다+나다)이다. 그러므로 '맞다'의 뜻과 '나다'의 뜻을 알아야 '만나다'의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가 있다. '맞다'는 "네 말이 맞다."에서처럼 '옳다(틀림없다)'라는 뜻으로도 쓰지만, 이것은 '만나다'를 만드는 것과 상관이 없다. "어여쁜 며느리를 맞다."에서처럼 '맞이하다'라는 뜻, "대낮에 도둑을 맞다."에서처럼 '당하다'라는 뜻, "날아오는 돌에 맞다."에서처럼 '부딪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맞다'가 '만나다'를 만드는 것과 상관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만나다'에는 '맞이하다'라는 뜻이 가장 알맹이로 쓰였다. 그래서 '만나다'는 본디 (맞다 + 나다)를 말밑으로 하여 맞이 하다+나타나다), 곧 '맞이하여 나타나다'를 뜻의 알맹이로 하는 낱말이다. 그런데 '맞이하다'가 과녁말(목적어)을 더불어 쓰기 때문에 '만나다'도 과녁말을 더불어 쓰게 마련이다. "소나기를 만나다." "풍년을 만나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는 사람에서 몸을 빼고 남는 것이 마음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값어치를 매길 적에는 몸보다 마음을 훨씬 무겁게 여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지, 국어사전들의 풀이를 살펴보자. 1) ① 생각, 의식 또는 정신. ② 감정이나 기분. ③ 의지나 결심. ④ 관심이나 의향. 2) 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②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③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④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⑤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⑥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의 감정. ⑦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3) ① 사람의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움직임. 그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속생각. ② 기분이나 심정. ③ (어질다. 착하다, 모질다. 약하다. 굳세 다 등과 함께 쓰이어 '사람의 성품이나 심사'를 나타낸다. ④ (다지다. 먹다 등과 함께 쓰이어) '각오, 결의, 의향' 등을 나타낸다. 1) 은 속살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고 뜻이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직도 '마고할미'의 자취가 두루 널려 있다. 북으로는 평안도에서 남으로는 제주도까지, 놀랄 만큼 큰 돌이 있는 곳에는 으레 마고할미 이야기가 살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설문대할망', 충남 바닷가에서는 '갱구할미'라고 이름을 조금 달리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 줄거리도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야기 꼬투리는 모두 서로 비슷해서 본디는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에서 흩어져 나간 것들임을 짐작하게 한다. 꼬투리들을 대충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고할미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며(충북 단양), 본디 하늘에 살던 하느님의 딸이었다(지리산) 2. 키가 하늘에 닿아서 해를 가리고(경남 통영), 한라산 꼭대기를 베개 삼아 베고 누우면 발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얹혔고(제주), 옷을 입고 춤을 추자, 삼남 지방에 그늘이 져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충남 바닷가) 3. 자연을 만드는 힘이 있어서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터진 구멍으로 흘러서 오름들이 되고,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은 한라산이 되었으며(제주), 임금님에게 쫓겨나서 주리고 목이 말라 흙을 먹고 바닷물을 마시다가 설사하였더니 우리 강산이 되었고(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뜬금없다'를 찾으면 "갑작스럽고도 엉뚱 하다."라고만 풀이해 놓았다.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속이 후련하지는 않다. 어째서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뜬금'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뜬금을 알자면 먼저 '금'을 알아야 한다. 우리 토박이말 '금'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금'은 '값'과 더불어 쓰이는 것이다. '값'은 알다시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놓는 돈이며,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건네주고 받아 내는 돈이기도 하다. 값을 받고 물건을 팔거나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사거나 하는 노릇을 '장사'라 하는데, 팔고 사는 노릇이 잦아 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팔고 샀다. 그때가 '장난'이고, 그곳이 '장터'다.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에는 팔려는 것을 내놓는 장수와 사려 는 것을 찾는 손님들로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값을 올리려는 장수와 값을 낮추려는 손님이 흥정으로 줄을 당기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랑이도 불꽃을 튀긴다. 그런데 우리 고장같이 농사로 살아가는 곳의 장날 장터는 크게 둘로 갈라진다. 농사꾼들끼저마다 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