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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도미와 아랑, 그 무엇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몽유도원도》 최인호, 열림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도미와 아랑.

삼국사기 <도미전>에 나오는 이 부부는 한국 설화에서 가장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세기의 한 쌍’이다. 백제 개로왕이 용모가 아름다운 아랑을 보고 욕심이 일어, 남편 도미의 눈을 멀게 하고 강제로 취하려 하자 도망친 아랑이 다시 도미와 해후하여 고구려 땅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절절한 사랑은 후대의 많은 작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우물이 되었다. 월탄 박종화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를 썼고 최인호 작가도 이 소설, 《몽유도원도》를 길어 올렸다.

 

 

머리말에서 그는 ‘우리나라 설화 속에서 이와 같이 피처럼 절실하고, 죽음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일찍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라며 한 편의 고서화를 보는 것 같은 ‘고졸한’ 느낌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머릿말)

나는 《몽유도원도》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설화 중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빌려와 낡은 고서화를 보는 것 같은 고졸한 느낌의 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줄임)… 제목을 ‘몽유도원도’라고 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노닐던 도원경의 선경을 당대의 화가였던 안견에게 이야기해주고 그 꿈속의 도원경을 그린 안견의 화제(畵題)를 빌려온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이 ‘몽유도원도’인 까닭은, 이 모든 비극이 개로왕의 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17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개로왕의 원래 이름은 여경(餘慶)으로 어린 나이에도 황음(荒淫)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지났을 무렵, 낮잠을 자던 그는 꿈속에서 절세가인을 만나게 된다. 여경은 꿈에서 깨어난 즉시 그 여인의 모습을 화공에게 명하여 똑같이 그리도록 한 후, 그림을 전국에 보내어 그 여인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여인이 쉽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여인은 여경의 눈에 띄고야 만다. 바로 도미의 부인 아랑(娥浪)이었다.

 

도미(都彌)는 백제의 도읍인 한성 부근에 사는 평민이었다. 그리고 오래전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시절 멸망하여 백제에 복속된 마한의 후손이 모여 살던 부락의 우두머리, 곧 읍차(邑借)였다. 나름대로 지위와 세력이 있는 도미였지만 아내를 뺏으려는 여경의 권력과 계략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도미와 아랑, 둘은 서로를 믿었다. 서로가 절대 사랑을 배신할 리 없음을 믿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여경의 잔인함을 부채질했다. 아랑은 자신을 대신해 시녀를 잠자리에 보내기도 했으나 이내 들키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경이 도미를 죽이려 하자 아랑은 제발 도미의 목숨만 살려달라고, 그럼 자신은 남편을 버리고 대왕을 따르겠다고 애원한다. 결국 도미는 두 눈이 뽑힌 채로 배에 태워져 떠내려가고, 아랑은 한바탕 통곡한다.

 

아랑은 결국 도미를 버릴 수 없었다. 달빛이 가득한 밤, 홀연히 떠내려온 배 한 척에 몸을 실은 그녀는 도미가 있는 섬에 가 닿게 되고, 둘은 함께 고구려 땅으로 건너가 걸인이 되어 산다. 《삼국사기》는 ‘두 사람은 구차스럽게 살면서 객지에서 일생을 마쳤다’라고 기록한다.

 

그 뒤 개로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p.143-145)

그로부터 7년 뒤. 대왕 여경은 고구려 군사의 공격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때의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나와있을 뿐이다.

“대왕 여경은 아차산성 밑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낮잠의 짧은 꿈속에서 만났던 몽유(夢遊)의 여인. 그 꿈속에서 만났던 천상의 여인을 현실 세계 속에서 찾으려 했던 대왕 여경. 그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 개로왕. 그를 한갓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꿈속에서 본 도원경(桃源境)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서 헤매는 몽유병(夢遊病)의 꿈놀이가 아닐 것인가.

 

꿈속에서 본 여인을 쫓다 욕심에 눈이 멀어,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린 개로왕. 꿈속에서 아름다웠을 그 복숭아밭은 그의 욕심으로 그만 황량한 밭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곳은 꿈속에서 거닐었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때로는 꿈으로 남겨둬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어쩌면 개로왕 같은 못난 면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망령되이 꿈을 좇아 현실을 망쳐버리는 모습. 그래서 지은이도 우리의 삶이 ‘꿈속에서 본 도원경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 헤매는 몽유병의 꿈놀이’라 표현하지 않았는지.

 

도미와 아랑은 이 허황된 꿈놀이의 희생양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길이길이 전해져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름다울 아(娥), 물결 랑(浪). 이름마저 아름다운 아랑의 뜻대로, 지극한 사랑의 물결은 영원토록 잔잔히 번져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