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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국제언어 사이 ‘중간언어’로서의 기능 기대한다

최만리, 훈민정음의 반면교사(反面敎師) ②
[‘세종의 길’ 함께 걷기 103]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에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를 외친 최만리를 이어 조명해 본다. 결코 인간 최만리가 아닌 역사 속 최만리의 의식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세종 25년(1443) 훈민정음을 창제했음을 알린다. 창제 몇 달 뒤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6가지 항의 상소를 한다.(지난 3항에 이어 나머지 항을 보자.)

 

1. (넷째) 만일에 말하기를, ‘사형 집행 같은 것을 이두 문자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가령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해득하는 자가 직접 구두 진술을 읽고서 허위인 줄을 알면서도 매를 견디지 못하여 그릇 항복하는 자가 많사오니, 이는 글 뜻을 알지 못하여 원통함을 당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합니다. 만일 그러하오면 비록 언문을 쓴다고 할지라도 무엇이 이것과 다르오리까. 이것은 형옥(刑獄)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가 어떠하냐에 있고, 말과 문자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신 등은 그 옳은 줄을 알 수 없사옵니다.

 

ㆍ의견 : 가) 백성이 글을 이해 못 한다는 뜻인데 글자와 글로 백성을 교육할 수 있다는 점을 빼놓고 있다. 나) 제도냐 사람이냐의 문제에서 한쪽 만을 주장하고 있다.

 

1. (다섯째) 나라가 요즈음에 조치하는 것이 모두 빨리 이루는 것을 힘쓰니, 두렵건 데 정치하는 체제가 아닌가 하옵니다. 만일에 언문은 할 수 없어서 만드는 것이라 한다면, 이것은 풍속을 변하여 바꾸는 큰일이므로, 마땅히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듬 벼슬아치에 이르기까지 함께 의논하되, 다시 세 번을 더 생각하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이에 시행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갑자기 가볍게 운서(韻書)를 고치고 근거 없는 언문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장인 수십 인을 모아 찍어서 급하게 널리 반포하려 하시니, 후세의 의견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이번 청주 초수리(椒水里)에 거동하시는 데도 특히 농사가 흉년인 것을 염려하시어 전날에 견주면 10에 8, 9는 줄어들었고, ... 언문 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미쳐야 할 일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나들이할 때 일시 머무는 곳)에서 급하게 하시어 전하가 몸을 다스리는 데 복잡하게 하시나이까. 더욱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ㆍ의견: 가) 글자를 만드는 일은 픙속을 바꾸는 혁명 같은 일이다. 나) 몸이 아파 가는 초수리 온천 길에도 훈민정음 보완연구를 위한 서책을 챙긴다.

 

1. (여섯째) 옛 선비가 이르기를, ‘여러 가지 노리갯감은 대개 의기를 빼앗는다.’ 하였고, ... 이제 세자가 비록 덕성이 성취되셨다 할지라도 아직은 성인이 가르친 학문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시어 더욱 그 이르지 못한 것을 깊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 이를지라도 특히 선비의 육예(고대 중국 교육의 여섯 가지 과목 곧 예ㆍ악ㆍ사(射)ㆍ어(御)ㆍ서ㆍ수)의 한 가지일 뿐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상소를 보고, 최만리 등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르기를, ‘음을 사용하고 글자를 합한 것이 모두 옛글에 위반된다.’ 하였는데, 설총의 이두(吏讀)도 역시 음이 다르지 않으냐. 또 이두를 제작한 본뜻이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함이 아니하겠느냐.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리하게 한 것이라면 이제의 언문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 한 것이다.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임금이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또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또 상소에 이르기를,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라.’ 하였으니, ... 또는 사냥으로 매사냥을 하는 예도 아닌데 너희들의 말은 너무 지나침이 있다." 하니, 최만리 등이 대답하기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이 다르다 하나, 음에 따르고 해석에 따라 어조(語助)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사온데,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변한 것이고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였다.

 

ㆍ의견 : 가) 세종과 아들 문종이 함께 연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 최만리의 공격에 세종은 “네가 운서를 아느냐”고 문자 구조와 음운에 대해 모름을 공격적으로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임금과 신하는 백성과 나라의 미래를 보는 눈높이에 차이가 있다. 세종은 문자로 백성이 가질 기술과 지식의 축적과 함양 같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임금과 신하는 백성과 나라의 미래를 보는 눈높이에 차이가 있다.

 

세종의 조치 : 김문은 말이 다르다

 

상소에 대한 세종이 취한 대응은 단호했다. 즉시 이튿날 정창손은 파직, 김문은 국문하게 했다. 훈민정음의 뜻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를 도우면 되나 인간적으로 곧 자기 일의 본질에 과한 의식이 없다면 선비답지 못한 것이다.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은 말하기를,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 충신ㆍ효자ㆍ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뒤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속된 선비다."

 

또 하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 한 두 가지 말을 물으려 하였던 것인데, 너희들이 말을 바꾸어 대답하니, 죄는 벗기 어렵다." 하고, 드디어 부제학 최만리ㆍ신석조ㆍ김문ㆍ정창손ㆍ하위지 등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시키고, "김문이 앞뒤에 말을 변하여 아뢴 까닭을 국문하여 아뢰라."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에 따라 말이 다른 사람은 믿기 어렵다.

 

드라마의 해설 :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SBS에서 2011년 10월부터 24부작으로 세종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 동안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방영했다. 그 의의를 잠시 보자.

 

‘세종(한석규 분)이 새로이 백성들이 배워 쓰라고 글을 만든다고 백성들의 삶이 더 좋아질 것이 무엇인가? 옥떨이(정종철 분)도 말한다. 어차피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면 된다고. 굳이 시계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농사를 짓고 먹고사는데 글이 있어야 할 필연도 없다. 오히려 새로운 글이 만들어짐으로써 그것을 배워야 하는 번거로움만 늘게 된다. 글을 배워 읽고 쓸 줄 알게 되었으니 이제까지 몰라서 좋았던 일들에 대해서까지 알아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는 또한 강채윤(장혁 분)이 말한 글을 알아도 죽는다고 하는 까닭이다.’ ‘글자가 백성들을 양반으로 만들어줍니까?’ 글을 아는 것과 백성에게 힘이 생긴다는 것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겠는가? 드라마는 그 반대편에 선 똘복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마주하도록 만든다.

 

백성은 글을 몰라서도 죽고 알아서도 죽는다. 임금이 만드는 글자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가? 역사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은 당시는 그러한 똘복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역사며 현실이다.’ (참고: 스타 데일리 뉴스)

 

드라마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또 다른 의제를 제기했지만 그런데도 역사적으로 국가와 백성의 흐름을 읽고 멀리 내다 본 세종의 눈높이에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부언 : 한글의 국제어 기능의 가능성

 

세계 여러 곳에서 생겼던 글자는 모두 50여 종이 된다고 한다. 이 많은 글자의 종류는 글자의 발생지역과 그 글자를 연결해 이집트문자, 아랍ㆍ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중국 황하의 한자 등이 두드러진다.

 

이 가운데 정보화 사회를 맞아 익히기 쉽고, 변용이 쉽고, 일음일가의 법칙(하나의 낱소리가 한개의 글자를 표기)에 따른 다른 언어로 언어변환이 쉽다는 뜻에서 한글(‘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이 만든 말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여러 말을 중개하기 편한 언어ㆍ문자로서 국제 언어 사이 중간언어(middle language)로서의 기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