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2년여 동안 집 뒤편 둘레길을 돌면서 하루하루 신경을 쓴 것이 있다. 바로 둘레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작은 돌탑의 존재였다. 굵은 돌 10여 개 남짓을 위로 쌓아 올린 돌탑이 하나가 서 있다가 어느 날 보면 누군가가 무너뜨려 놓았다. 돌탑은 두 개일 때도 있었지만 역시 세워지면 곧 무너졌다. 그렇게 세우고 무너트리는. 말하자면 돌탑 전쟁이 일 년 넘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대 계곡은 큰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토사가 휩쓸려가 이에 대해 계곡의 바닥을 파고 굵은 돌로 물길을 새로 만드는 사방작업이 2년 전 봄 여름에 있었는데 그 공사가 끝난 뒤 가을 계곡 옆 언덕배기에 누군가가 작은 돌탑을 처음 만들어 세웠다. 그런데 며칠 뒤에는 그게 무너져 있었고 이에 다시 세워졌다가 며칠 뒤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해가 바뀌면 무너뜨리는 분이 참고 넘어가 줄까 했지만, 여전히 세우고 부수고 하는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돌탑을 쌓는 분은 남이 일껏 힘들게 만들어놓은 돌탑을 왜 그렇게 부수려 하느냐고 경고성 글을 쓴 종이를 달았는데 부수는 분은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수는 바람에 종이도 땅에 떨어졌다. 그런 다음엔 글의 내용이 점차 강경하게 변해갔다. '이러면 당신의 운명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라는 경고문구가 나왔다. 그래도 그다음 날 보면 돌탑은 다시 무너져 있었다. 그러니 날마다 둘레길을 돌며 이 갈등을 보아야 하는 우리(아니 필자 혼자이겠지만)의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우리나라의 물이 흐르는 골짜기나 냇물 곁에는 자연스레 돌을 위로 쌓아놓는 사례가 많다. 우이동의 우이령길 입구 골짜기에는 그런 돌탑이 수십 개가 쌓여 있어 산책하는 시민들이 일부러 보러 가서 사진에도 담곤 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기념물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오랫동안 동네의 명물로서 주민과 산책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 폭포동 근처 이 작은 돌탑도 우이동 계곡처럼 그냥 다소곳이 서 있는데, 어느 분이 매번 쌓은 것을 무너트리려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성황당이란 것이 동네 입구에 있어, 거기에는 주위의 돌들을 모아서 약간 높게 쌓아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소박한 기원을 뜻하는 민속으로 굳이 종교와 연관시킬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풍습은 몽고에 가도 ‘오보’라는 이름으로 있다. 그것은 길을 알리는 표지판의 역할도 하면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작은 소망탑의 역할도 해왔다. 그러한 작은 소망이 담긴 돌더미, 돌탑 이런 것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을 굳이 용납하기 어려워하시는 분도 있구나.
어쨌든 돌탑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양쪽의 생각을 더듬어보자.
먼저 돌탑을 세우는 분은 ‘이렇게 길옆에 돌을 세우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물으실 것 같다. ‘과거 우리는 전통적으로 길옆에 돌무더미를 조성해서 거기에 새끼줄을 치기도 하고 장승을 세워 이정표와 함께 길로 다니는 분들의 평안을 빌었는데 이 돌탑이 그런 비슷한 게 아니겠는가? 또 무슨 가건물도 아니고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용납하지 못하고 매번 시비를 거는가?’ 하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반면 부수는 분의 처지에서는
‘돌탑이 절과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돌탑이 서 있는 곳은 대두분 절의 입구나 어귀이므로 불교적인 의미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본인은 싫은데 산책길 입구에 떡 서 있는 것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면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꼭 내가 기독교를 믿어 우상 숭배하지 말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불교적인 연상이 가능한 것들로 산책길의 기분이 헝클어지는 것은 솔직히 싫고, 그래서 그 의사를 표시한 것인데 그것을 이해하고 용납해주지 않느냐?’라고... 이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가 세우는 분이나 부수는 분이나 두 분 모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서로 한 발씩 물러나자는 것이다.
탑을 세우는 분은 탑을 싫어하는 분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해법이 없을 수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많아 다니는 길옆에 있으니 신경 거슬린다고 하니 그럼 사람이 덜 다니는 곳에 세워보면 어떨까 하는 점이었다. 탑을 부수려 하신 분도 큰 길이 아니라면 굳이 꼭 무너트리며 탑을 원하는 분의 마음을 거슬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들이 크게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서로 양해하고 배려를 조금씩 해주면 해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난 가을 초입 길가에 돌탑이 보이지 않아 이 전쟁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더니 훨씬 안쪽 일반인들의 산책로와는 조금 떨어진 평지 옆에 돌탑이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였다. 앗! 여기로 와 있었구나. 나의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다. 이제는 10개 가까이 되는 탑들이 일렬로 멀쩡하게 무너지지 않고 잘 서 있는 것이다
그렇구나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대로, 두 분 사이에 마음의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구나. 이제 일반 등산로보다는 보다 안쪽에 탑이 서 있으니 그 등산객은 안보아도 되고, 또 돌탑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리로 가서 보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이제 이 산자락 작은 골짜기에도 평화가 왔구나. 입구에 청설모도 이제 가끔 보인다. 전쟁(?)이 시작된 지 꼭 일 년이 지나 드디어 모두에게 평화가 온 것이었다.
이제 곧 새해다. 이 돌탑 사례처럼 서로가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조금씩 물러서고 용납해주면 새해가 얼마나 훈훈할까? 1년을 끈 이 돌탑 전쟁이 평화롭게 끝나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돌탑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소망과 우리 산책객들의 기쁨이 다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골짜기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의 공존의 방법을 찾았으므로, 이제 누구든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분들이 돌탑을 보며 새해의 안녕과 평안을 함께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