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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구세주 미륵불을 생각한다

한하운, <은진미륵불>
[겨레문화와 시마을 1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은진미륵불

 

                          - 한하운

 

     비원에 우는 사람들이

     진정소발(眞情所發)을

     천년 세월에 걸쳐

     열도(熱禱)하였건만

 

     미륵불은

     도시 무뚝뚝

     청안(靑眼)으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그렇게만 아득히 눈짓하여

 

     생각하여도 생각하여도

     아 그 마음

     푸른 하늘과 같은 마음

     돌과 같은 마음

 

     불구한 기립(起立) 스핑크스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집착을 영영 끊고

     영원히 불토(佛土)를 그렇게만 지키는 것인가.

 

 

 

 

오늘은 성탄절 전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시는 크리스마스이브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지만 헐벗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할 구세주 사상도 있다. 서양에 구세주 신앙이 있다면 우리에겐 미륵신앙이 있었다. 미륵신앙은 미륵보살이 사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말세인 세상을 구하러 미륵이 오시기를 바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기독교 신앙의 천국에 가는 것과 구세주를 맞이하는 것에 견줄 수 있다.

 

특히 미륵사상이 있었던 우리나라 바닷가에는 미륵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던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고, 그 표식인 매향비(埋香碑)가 곳곳에 서 있다. 그 매향비들은 1309년(충선왕 1)에 세운 ‘고성 삼일포매향비’를 비롯하여 ‘평북 정주매향비’, ‘사천 흥사리매향비’, ‘신안 암태도매향비’, ‘영암 채지리매향비’ 등이 그것인데 대부분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세웠다. 당시 자주 출몰하던 왜구 때문에 고통받던 백성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빌었던 흔적이다.

 

 

위 시는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시인의 <은진미륵불> 일부다. 한 시인은 나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은진미륵불> 시에서 비원에 우는 사람들이 천년 세월에 걸쳐 열심히 기도하였지만 은진미륵불은 “불구한 기립(起立) 스핑크스로 / 세월도 / 세상도 / 운명도 / 집착을 영영 끊고 / 영원히 불토(佛土)를 그렇게만 지키는 것인가.”라고 노래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몰라주는 미륵불에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것인가? 그와 또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의 간절한 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