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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런 문맹자가 사는 법

한자문맹과 디지털문맹에 대한 생각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8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상황1)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는데, 받으실 분 이름을 한자로 쓴 것을 담당직원이 못 알아보는지 이름의 발음을 묻는다. 그래 읽어주었더니 그 직원이 소포 등록을 해서 보냈는데 나중에 배달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온 것을 보니까 발음이 틀렸다.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주 쉽고 기초적인 글자인데 모르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이름에는 ‘明’과 ‘大’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을 ‘영배’로 등록해놓은 것이다. 한동안 좀 멍한 상태가 되었다. 우체국에서 대민업무를 맡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 한자도 모르고 근무한다는 말인가? 우리 속담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리 늘 하는 말로 '몸이 피곤해서 방안에 큰 대 자로 누워'라는 게 있는데 이 큰 대(大)라는 한자 글자를 모른다는 말이니 그 속담 뜻도 당연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좀 어려운 글자라면 모를까 일상에서 쓰는 아주 기초적인 한자도 전혀 모르는 세대들이 우리 정보사회 일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로 이분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에서 자(字)의 의미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할 수 있다.. '큰 대(大) 자(字)로 눕다'도 두 글자를 모를 것이니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와 젊은 세대 사이에 한자라는 글자를 놓고 알고 모르고 하는 차이가 있으니 이를 한자문맹(文盲)이라고 해야 하나?

 

상황2)

마트에서 간단한 물품을 사야 해서 마침 아들과 같이 들어가 물건을 골랐는데 계산하려다 보니 손님이 혼자 스스로 계산하는 셀프계산대는 비어있고 종업원이 계산해주는 곳은 줄이 길다. 그래도 불안해서 내가 종업원의 계산대 줄로 서려고 하니 아들이 왜 그러시냐며 셀프 계산대에 날 데리고 가서 바코드를 읽고 카드를 넣어 금방 계산을 끝낸다. 시간이 엄청나게 절약된다.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 이런 것 이제 겁나시지요? 알고 보면 쉽고 편한데..."

 

아 나도 이제 노인 축에 들어가 이런 디지털 문명에 적응이 안 되고 뒤처지니 이 디지털 문자를 읽어내지 못하는 디지털 문맹(文盲)으로 낙오돼 있음을 실감한다.​

 

상황3)

집 근처에 무인 점포가 많이 생겼다. 과자류를 마음대로 고르고 그것을 자동계산기에 대면 바코드를 읽은 뒤 계산을 하고, 거기에 카드를 넣으면 되는데 그런 과정이 귀찮고 성가시다고 아예 가게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모처럼 햄버거를 먹어볼까 하고 들어갔더니 주문기에서 주문하란다. 일일이 읽어가며 과정을 따라가며 골라서 등록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가게를 나와버렸다. 이것도 친구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의 실화다.

 

 

젊은 사람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문맹(文盲)이란 말도 어려운 한자말이라 정확히 그 뜻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맹(盲)’이란 말이 특정 장애인 비하의 이미지가 있으니 다른 말로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을 뜨고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본다면 젊은이들은 한자문맹,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은 디지털문맹인 것을 부인할 수 없겠다. 나이 든 분들이 디지털 앞에서 헤매는 것은 디지털 치매이지 문맹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치매는 뭘 알다가 까먹는 것이므로 못 읽어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분명히 치매가 아닌 문맹이다.

 

이러한 세대 사이 문맹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문맹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공부하던지, 시키던지 해야 하는데 두 가지 다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이 든 처지에서 말한다면 한자를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이 엄청 많은 것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필자가 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도 문교부(교육부의 당시 이름)가 한자교육을 초등학교에서부터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의 여파로 결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는데, 성인이 되면서 불편이 컸기에 필요 때문에 한자와 한문을 조금씩 공부하며 겨우겨우 따라갔던 형편에서 중학교 때까지 사람들의 한자 이름을 거의 몰라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한자를 모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한글전용론을 외치는 분 덕분(?)에 힘든 한자공부를 안 하게 되어 그분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런 세대들이 사회의 주류로 올라서는 요즈음 이젠 한자문맹의 문제를 인정하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즈음 느끼는 것은 우리가 한자의 뜻을 모르고 마구 쓰다 보니 명사, 고유명사, 지명 이런 데에 담겨 있는 전통이랄까, 역사랄까 이런 것들을 거의 전수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거기서 파생되는 것이 생각의 깊이와 폭이 좁다는 것 아닌가? 사람의 이름도, 긍정적인 뜻과 이미지를 가진 글자들, 이를 테면 明(밝음), 大(크다), 賢(똑똑하고 어질다), 光(빛나다) 등등의 의미를 알기 어려우니 다른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이름에 이런 글자를 썼을 때도 이런 이름이 스스로 주는 인식과 행동거지의 긍정적 효과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방향을 뜻하는 한자를 의식하지 않으니 예를 들어 동인천 그러면 인천 동쪽을 뜻하는 東인천인지 아니면 그냥 동인이라는 하천(川) 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그에 따라 발음도 대충 막 붙여서 읽다 보니 더욱 구별이 안 된다. 거기에다가 디지털 시대라고 동네 이름을 길에 따라 번호를 매기는 새로운 주소로 다 바꾸니 동네 이름이 형성된 역사적 의미가 다 날아가 버렸다. 한자가 그렇게 디지털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다 버리고 마는 현상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

 

‘그깟, 역사와 전통이 뭐 소중하다고 굳이 지켜나가야 합니까?’라고 젊은 세대들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굳이 이름에 한자를 써야 합니까? 그런 한자 몰라도 얼마든지 살아나갈 수 있지 않는데 왜 자꾸 어려운 한자 이야기를 하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에 한자를 쓰고 싶으면 창구 직원들이 한자를 알고 모르고를 시비하지 마시고 그냥 우체국에 설치되어 있는 비대면창구를 이용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또 한글 전용을 찬성하시는 분들은 이제 한자 안 써도 다들 이해하는 세상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어디 한자 쓰는 데를 보았느냐고 할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한글로만 쓰자는 것인데 왜 어렵게 가자고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글을 쓰더라도 거기에 깔린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한자에서 온 것들인 만큼 근본뿌리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지지 않느냐는 게 나의 주장이다.

 

 

또 ’우리가 사람 사는 게 기왕이면 많이, 그것도 제대로 알고, 많이 느끼고, 바르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더 좋고 바람직하지 않으냐‘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밥 먹고 사는 문제도 그렇고 음악이나 미술 공연장을 찾고 감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모르고 있으면 아무 느낌도 없이 덤덤하지만, 알고 공부하고 맞이하면 얼마나 맛이 풍부하고 느낌도 좋은지를 알 것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들보다도 서양의 와인이나 미술 등에 탐닉하면서 더 많이 좋아하고 즐거움도 더 많이 느끼지 않느냐, 그러니 기왕이면 한자도 기본은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장 요즈음 유행하는 '비대면'이란 말도 한자를 모르면 이게 화장실 변기에 쓰이는 비데를 뜻하는 말인지, 무슨 면사무소 이야기인지가 헷갈리지 않느냐, 그러니 '얼굴을 보지 않고, 마주하지 않고'라는 뜻의 비대면(非對面)이란 것을, 적어도 저런 기본적인 한자를 알아야 금방 이해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문화신문 사장님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시긴 하다)

 

그러기에 정말로 적어도 고등학교를 나올 때까지는 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그 뜻을 구별해주어야 할 필요성이 많은 최소한의 한자를 익히도록 하고, 우체국이나 공무원 시험에서는 이런 한자 해독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검증하는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면 아마도 기본적인 한자는 다들 배우려 애를 쓸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

 

그러나 사실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의 디지털문맹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우리가 느껴야 하고 자녀들을 통해서건 다른 학습도구를 통해서건 이젠 공부하고 적응을 해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들에 대해서도 디지털교육을 어느 정도는 반(半) 강제화, 또는 의무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젊은이들의 한자문맹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들의 디지털문맹에 대해서는 이제 나이 들어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 젊은이들이 이해를 해주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그칠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되건 나라가 되건 이 디지털문맹 퇴치사업을 새롭게 벌여야 한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우리 집 식구들도 '당신이나', '아버지나' 먼저 디지털을 배울 일이지 맨날 남 탓만 하느냐고 핀잔을 들을 일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만 그래도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참고로 명약관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대면이란 말을, 한자를 전혀 모르고 있으면, 설명이 다음과 같이 무척 길어질 것이다. "비는 아니라는 뜻이고, 대는 마주 본다는 뜻이고 면은 얼굴을 뜻하는 한자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비대면은 비데가 어떻다는 뜻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 무인 처리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