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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푹 빠지다

비올레타 역을 소프라노 김은경에 감동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2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습니다.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경 소프라노가(계속 김은경 소프라노라고 하려니까 호칭이 길어 앞으로는 그냥 ‘은경 씨’라고만 하겠습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하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찬양대 광고 시간 때 가끔 은경 씨가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일정이 안 맞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간 것도 제가 올해 찬양대장이 되는 바람에 명색이 찬양대장인데 가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라는 의무감도 작용한 것임을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번 공연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오페라단이지만, 1991년에 창단하였으니 우리나라로서는 역사가 있는 오페라단이네요. 잘 아시다시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춘희>를 오페라로 한 것이기에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뜻의 이태리말이려니 했는데,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은 여자(The woman who goes astray)’라는 뜻이랍니다.

 

여자가 정상적인 삶을 벗어나 타락한 길로 들어섰기에 ‘라 트라비아타’라고 한 것인가? 참! 소설 제목이 ‘동백아가씨’인 까닭은 소설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동백꽃을 사랑하였기에 ‘동백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라고 한 것이지요. 고티에는 흰 동백꽃이나 빨간 동백꽃을 달고 다녔는데, 자신이 생리 중인 때는 빨간 동백꽃을 달았답니다. 그러니까 빨간 동백꽃을 달았을 때는 ‘내가 지금 생리 중이니까, 성교는 안 돼요’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가?

 

그런데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뒤마가 창작해낸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당시 프랑스 사교계에서 유명한 여인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 1824-1847)입니다. 뒤마도 이 여인을 사랑했다는데, 뒤마가 오랫동안 여행을 갔다 오니 그사이 마리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는군요. 그래서 마리를 잊지 못한 뒤마는 1848년 마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춘희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4년 뒤 뒤마는 소설을 희곡으로도 개작하였는데, 연극이 큰 성공을 이루어 <춘희>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베르디도 이 연극을 보고 크게 감명받고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하지요. 당시 베르디는 아내가 죽은 뒤 소프라노 가수 스테르포니와 동거 중이었는데, 스테르포니는 베르디와 만나기 전 이미 아버지가 다른 아이 둘을 기르는 미혼모였답니다. 그래서 이런 여자와 사는 베르디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였기에, 이런 점에서도 베르디는 <춘희>에 공감하여 오페라를 만들 결심을 한 것이지요.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받는 오페라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병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는 통속적인 신파조의 줄거리라고 하겠는데,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니까 그만큼 인기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사랑받는 <라 트라비아타>도 초연에서는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실패 요인 가운데 하나는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뭔가 가냘픈 인상을 주어야 하는데, 주인공 비올레타로 나온 소프라노 가수 살비니 도나텔리가 너무 뚱뚱하였다나요? 하하! 어찌 되었든 여주인공은 일단 예뻐지고 볼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은경 씨는 노래에 미모까지 따라주어야 하는 비올레타 배역에 딱 어울렸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가 사랑받는 것도 미모가 받쳐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제가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한 것도 안나 네트렙코의 공연 실황이네요. 물론 현장에서 본 것은 아니고 DVD로 본 것입니다. 2005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공연 실황인데, <라 트라비아타> 무대를 현대로 설정하였고, 무대를 작게 단순화시킨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DVD를 보면서 안나 네트렙코와 알프레드 역의 롤란드 빌라존(Rolando Villazon)의 환상적인 호흡에 빨려들어 공연을 보았었지요.

 

사실 제가 베르디 오페라를 실제 공연으로 본 것은 이번 <라트라비아타> 이전에는 <나부코>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베로나에 갔을 때 로마시대의 유적인 아레나 경기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나부코>를 본 것입니다. 그때가 한여름이라 더위를 피해 공연은 밤 9시에 시작하였는데, 공연 시작할 때까지도 낮의 태양에 달궈진 돌계단이 식지 않아 엉덩이를 뜨뜻하게 지지면서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참! <라 트라비아타> 공연 본 이야기를 한다면서 정작 실제 공연 본 이야기를 안 했네요. <라 트라비아타>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1막에서는 비올레타와 알프레드가 사랑을 맺고, 2막에서는 알프레드의 아버지 제르몽의 애절한 호소로 헤어지고, 3막에서는 비올레타의 진심을 안 알프레드가 돌아오지만 이미 병이 깊어진 비올레타는 연인 앞에서 숨을 거두며 막은 내립니다. 그러니 은경 씨는 1막에서는 사랑의 활기찬 감정을 노래에 담아야 하지만, 3막에서는 슬픔을 담아 노래해야 하는데, 은경 씨는 이렇게 상반된 감정을 잘 소화하더군요.

 

또 저는 잘 모르지만, 비올레타가 소프라노의 다양한 기법을 소화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이라는데, 은경 씨는 이를 능숙하게 잘 소화해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비틀비틀하다가 쓰러지는 연기에서도 그대로 아픔과 슬픔을 객석의 관중들에게 잘 전해줍니다. 제가 3층에서 공연을 보느라 표정 연기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표정에서도 그대로 눈물을 떨어뜨릴 듯 연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1막에서는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가 나옵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축배의 노래 한 소절만 들으면 ‘아! 이 노래!’라고 할 것입니다. 2막에서는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설득하고 비올레타가 이에 답하는 이중창이 인상적입니다. 바리톤이 단전에서 음을 끌어올리며 굵은 저음의 노래를 부르니, 비올레타가 그 노래에 설득이 안 될 수 없을 것 같더군요. 3막에서는 비올레타가 죽어가면서 부르는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이 애절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이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은경 씨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그렇지만 공연하는 동안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가는 당장 감시 직원이 달려올 테니, 손말틀 사진기는 그저 만지작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은경 씨가 경남오페라단 갈라콘서트에서 부른 ‘아! 그이였던가’를 유투브에서 찾아서 아래에 올리니 한 번 보기 바랍니다. 1막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드를 생각하며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 경남오페라단 갈라콘서트에서 ‘아! 그이였던가’를 부르는 김은경 소프라노(유튜브 갈무리)

 

공연이 끝난 뒤에는 로비에서 은경 씨를 중심으로 김광훈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와 호산나 대원들이 모여서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호산나 찬양대의 재간둥이 총무 구 집사가 준비해온 꽃다발도 은경 씨 가슴에 안기구요. 그때까지도 은경 씨는 공연의 흥분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상기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페라 가운데에서는 특히 여주인공이 많은 노래와 연기를 소화해내야 하는 배역인 데다가, 은경 씨가 온전히 비올레타에게 몰입되어 연기를 하였기에 좀 피곤해 보이더군요. 은경 씨! 고생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은경 씨 덕분에 한편의 아름답고도 슬픈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 푹 잦아들 수 있었네요. 은경 씨! 고마습니다! 다음에는 은경 씨가 어떤 모습으로 음악 애호가들 앞에 나타날 것인가? 자못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페라하우스를 떠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