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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골목길 작은 화랑

이런 역사 문화명소가 많이 태어나 이어지기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대문 밖 주택가에 작은 갤러리가 있는데 가보실래요?"

 

회사 후배의 권유에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니 이번에는 거기는 서양화가가 살던 집인데 가보시면 아는 분이 있을 것이란다. 그래, 그렇다면 한 번 가보지. 이렇게 해서 발길을 들여놓게 된 것이 숭인동 골목이다. 숭인동 주민센터가 있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좁은 골목을 낀 집 벽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과 토끼, 거북 등이 함께 노는 그림이다.

 

"이거 생전에 그 미술가가 재능기부로 그려주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비탈에 있는 3층 건물의 입구로 끌고 간다. 거기에 작은 간판이 있다.

"욘보 스페이스"

 

욘보? 못 듣던 말인데 뭐지? 그랬더니 이 집이 김용기라는 화가가 사시던 곳이고, 그 화가가 어릴 때 일본에서 자라면서 일본 사람들이 용을 발음을 잘 못해 '욘기'라고 하니까 그 모친께서 욘보라고 아들에게 붙여준 애칭이란다. 말하자면 어머니한테는 영원한 아기인 그 아들의 뿌리가 살아있는 이름인데, 욘보 스페이스, 곧 욘보가 있던 공간이란 뜻이고, 그것이 이 골목에 있는 갤러리 겸 카페의 이름이 된 것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집안 곳곳이 온통 그림 천지다. 파란 바닷물의 항구도시를 그린 큰 유화 그림에서부터 동네에서 보는 아주머니들을 그린 것, 손바닥만 한 인물화나 꽃, 정물 등등 다양한 그림들이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모두 아버지가 그린 것이고요. 여기는 아버지 김용기 님이 사시던 곳입니다. 물론 제가 자란 곳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인사를 하는 분이 화가의 따님인데 전에 우리 회사 국제협력실에서 프랑스와 영어 통역 일을 하시던, 자주 뵙던 분이다. 20여 년 만에 다시 뵙는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분의 예술이 잊히지 않았으면 해서 아버지의 체취가 배어있는 이곳에 그림을 걸어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추억하는 갤러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갤러리 개관을 한 게 지난 6월 초니까 얼마 되지 않는다. 그분의 딸의 딸, 곧 외손녀가 이 갤러리의 관장이 되어 작품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따뜻한 정감이 듬뿍 담겨 있는 그림들, 거기에 무슨 이념이나 사상, 현실에 대한 풍자 등 이런 것에 휩쓸리지 않고 평생 그림을 통해 자신의 꿈을 드러내 보였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이 사는 자연과 동네, 그 땅에서 나는 식재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구수하고 인정 어린 아름다운 마음들이 벽을 채우고 천정까지 채워져 있다. 물론 화가가 가장 사랑한 딸의 얼굴도 있다.

 

 

"1926년생이신 아버지는 1970년대 초에 프랑스에 머물면서 유럽 전반을 활동무대로 삼으셔서 프랑스의 유명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셨고요. 귀국하셔서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도 맡으셨고 무엇보다도 60여 년 동안 언제나 그림만을 그리시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이곳 숭인동 골목 일대를 벽화골목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많은 애를 쓰셨고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셨다는 김용기 님. 연배로 보니 서양화가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따뜻한 구상작품으로 세상을 밝게 이끌어주신 원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보는 아주머니들의 소박한 얼굴과 구수한 분위기는 극사실도 아니고 추상도 아닌 구상작품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래층, 위층, 거실과 방에는 생전에 쓰던 소품이나 미술도구들, 그리고 당시 주요 잡지들에 실린 표지 그림들이 세월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다.

 

 

갤러리가 있는 곳은 오래된 주택가이다. 차 한 대가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골목인데 이 속에 옛날 살던 집이 갤러리가 되어있다. 입장료도 없다니 아무나 들어와 볼 수 있고 뭣하면 수제 쿠키에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와 보니 큰길은 이미 높다란 건물에 차량 소음으로 번잡하지만, 골목길 조금만 들어오니 거기는 평화와 사색과 위안이다. 이 골목의 집들은 저마다 다 역사가 있는데, 그런 집들이 이렇게 변신한 것은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인 모양이다.

 

"조용한 시골 같은 동네에 이런 갤러리형 카페가 생겨서 신기해요. 문 연 지 얼마 안 되어서 조용해요. 입지는 좋지 않은데 특색있는 곳이라 나중에는 북적일 거 같아요. 볼거리도 많고 옛날 서양화가 가득해서 프랑스 가정집에 와 있는 느낌도 드네요."​

 

누군가가 남긴 방문기에서 보듯 근대 이후 우리들의 삶의 흔적, 특히 주택가라는 것은 거의 다 부서지고 새 아파트로 들어서서 우리들의 역사나 체온, 추억들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동안 우리는 게딱지 같은 집들이 보기 싫다며 허물고 골목을 터서 큰길을 만들고 고층 빌딩을 세웠다. 우리 것을 부끄러워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그 자체가 구경하고 생각하고 즐기는 대상이다. 외국인들도 곧잘 골목길 탐방을 한다. ​

 

이 동네에도 이런 집들을 부수고 높은 아파트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과 역사, 작품이 있는 이 갤러리는 절대로 그런 유혹에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 말대로 따님이 이런 유산은 잘 지켰으면 한다. 그것이 조용히 많은 그림을 남기시고 또 골목을 벽화마을로 조성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겠냐고 그 딸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기에서 김용기라는 화가만이 아니라 그 예술가의 마음, 예술의 역할, 전통의 소중함을 함께 맛보고 생각하게 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옆 골목에는 백남준 씨가 태어난 집이 기념관이 되어있다. 그곳과 함께 이 숭인동 일대, 서울 성곽의 바로 바깥 옛 동네의 이런 아름다운 골목이 잘 지켜지기를, 마음 같아서는 한 집 건너 하나씩 뭔가 이런 역사 문화명소가 태어나 이어지기를, 골목길을 나서며 소망하고 있었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