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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달을 제대로 보겠구나

고향을 못 찾는 분들에게도 밝은 빛을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1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 한가위야말로 우리들이 몇 년 동안 기다리던 명절 아니었던가?

 

지난 6월부터 코로나에 대한 위기경보가 하향 조정되어 이 명절에는 코로나19 같은 호흡기 질환 걱정 없이 고향을 오가고 부모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에 말이다. 3년 만에 제대로 한가위를 맞이하는 것이다. ​

 

더구나 일요일에서 개천절로 이어지는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올해 한가위는 내려갈 때는 바쁘고 막히겠지만 고향에서 돌아올 때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만 연휴가 이어지면서 고향 대신에 나라 밖으로 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아쉬움이지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많은 것을 보면 좋게 생각해 줄 여지가 없지는 않겠다. ​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은 달빛을 보는 순간 고단한 인생,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나그네의 심사를 압축해서 쓸어 담았다​​.

 

床前明月光 침상 앞 달빛 어찌 그리 밝은지

疑是地上霜 서리가 내린 줄 알았잖아

擧頭望明月 고개 들어 밝은 달 보다 보니

低頭思故鄕 고향 생각에 고개 절로 내려가네.

 

우리가 보름달이 좋은 것은 그 속에 고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고향은 곧 부모님이고 부모님은 곧 우리에게 언제나 먹을 것을 대어주시던 포근함이고 넉넉함이다. 무엇이든 해주려 하고 무엇이든 먹이려 하고 무엇이든 객지에 나간 자식을 위해 싸주려 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다. 이제 올해 드디어 우리들은 고향을 찾아 그리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음껏 보고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꼭 중국 문인들의 시만 찾을까? 우리 조상들도 달을 보고 시를 남겼다.

 

십오야의 달(十五夜月)​

 

十五寒宵倚石欄 십오야 차가운 밤 난간에 기대어 서니

多看月色正團團 둥글둥글 보름달 참 밝기도 하구나

初陞嶺首開金鏡 고갯마루 처음 떠오를 땐 황금 거울 열린 듯

轉上天中掛玉盤 하늘 한가운데 올라서는 옥쟁반 걸린 듯

玄兎杵邊光自滿 검은 토끼 절구 옆엔 눈부신 흰 빛

姮娥窓外影無剜 항아의 자태도 어김없이 드러나네

誰干上帝同弦望 달이 언제나 둥글도록 누가 하느님께 청해다오

​ 長使淸輝遍世間 맑은 이 빛 두루 세상을 길이길이 비추어 달라고

                                                             ... 이응희 [李應禧, 1579 ~ 1651]

 

 

우리가 한가위라고 그 고생을 해가면서도 고향에 가려고 하고 겨우 한 시간을 보고 되돌아올망정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마음, 그 포근함, 그 사랑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도시로 나가서 살지 않으면 갈수록 어렵고 그 속에서의 삶이란 팍팍함과 살벌함으로 점점 달려가는 이 현실에서 우리에겐 고향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운 것이고 아무 걱정 없이 부모님이 해주시던 그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은 것이리라.

 

비록 팔순 구순이 되어 이젠 움직이기도 힘들어지신 부모님일지라도 그 주름진 손으로 만든 음식을 받아먹어 보고 싶고, 그 깊게 팬 눈가의 주름이 웃음과 기쁨으로 펴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먹고 산다고 고향을 나와 일에 매어 살다 보니, 또는 찾아갈 부모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대신 부모를 만나는 것이다. 그 달 속에 부모가 있고 고향이 있고 사랑이 있고 풍성함과 풍요로움이 있다. 달은 곧 어머니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빛을 보고 고향의 서리를 생각한 이태백보다는 달빛을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 달빛을 서리가 아니라 어머님의 백설기 쌀가루라 생각하면 비록 지금 남들보다 모자란 것 같고 못난 것 같아도 마음은 더 풍요롭지 않은가? 겨우 하루가량 둥글다가 곧 하현달로 접어들 저 달이 펼칠 공주의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추는 춤을 되도록 더 많이 보고 조금 더 창밖의 백설기 쌀가루를 마음으로 받아먹어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저 보름달이 기울지 않고 언제나 둥글었으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보름달이 좋은 것은 언제나 둥글기만 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믐과 초승달, 그리고 자기 모습을 잠시나마 아주 감출 수 있는 날도 있기 때문이리라. 늘 훤하게 보름달만 있다면 누가 그 고마움과 덕을 알리오. 스스로 몸을 줄여 비움의 고마움을 실천하니 다시 채움의 덕이 두드러지는 것이리니.

 

비우니까 채워지는 것이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낸다. 그러므로 보름달이 좋은 것은 늘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29일을 지나서 얻는 한 번의 선물이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가장 큰 달은 한해 365일 가운데 하루니 말이다. ​ 그러고 보면 달은 참 자유로운 존재라 할 것이다. 그 비움의 덕을 우리가 배울 일이다.

 

아. 올해는 다들 마음 놓고 고향을 찾아 그리운 부모를 만나뵐 수 있구나. 휴일도 길어져서 너무 급하지 않게 고향을 찾아 부모님의 사랑도 부모님이 해주는 송편의 맛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맛보는 넉넉한 한가위가 되겠구나. ​부모 형제랑 다 같이 달을 보며 소원을 빌 수 있게 되었구나. 정치 얘기, 돈 얘기는 제쳐두자. 그냥 정을 즐길 일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일이다.

 

보름달이여, 당신의 원력을 발휘해 주세요! 이런 가족들의 만남이 올해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길게 이어지기를.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 일을 하느라 고향을 못 찾는 분들에게도 밝은 빛으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