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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해학이 넘쳐나는 조선 도자기 ‘백자철화끈무늬병’

변형된 흰색이 오히려 매력적인 달항아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4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님이 쓴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에는 조선의 도자기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백자철화끈무늬병 이야기도 나오네요. 술병의 경우 술을 마시다 남으면 허리춤에 차고 가라고 술병에 끈을 동여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백자철화끈무늬병은 이 끈을 아예 백자 속에 무늬로 집어넣었습니다. 그것도 진짜 끈이 달려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끈을 휙~ 그려 넣었습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청색 선을 미리 긋고 이를 따라 끈을 그린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어쨌든 끈은 한 번에 그렸을 것 같습니다.

 

 

처음 박물관에서 이 백자를 보았을 때, 이 끈을 그려 넣은 조선 도공의 해학에 감탄하던 생각이 납니다. 이 백자를 보고 어떤 사람은 넥타이 병이라고 하데요. 하하! 달리 보면 백자가 넥타이를 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백자 밑바닥에는 ‘니ᄂᆞ히’라고 쓰여 있습니다. 글씨체로 보아 끈을 그린 도공이 내처 바닥에 이 글씨를 쓴 것 같습니다. 뭘까? 자신의 서명인가? 아니면 ‘니나노~’ 하듯이 흥겨운 감정을 표출한 것일까? 하여튼 백자철화끈무늬병은 조선 도자기 가운데 가장 해학이 넘쳐나는 도자기입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한 점을 고르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인문대생은 달항아리를 골랐지만, 미대생은 대부분 백자철화끈무늬병을 골랐다고 하네요.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달항아리에서는 뭔가 철학이 더 느껴지지만, 백자철화끈무늬병에서는 멋들어진 해학의 미가 돋보이니까요. 그런데 이름은 ‘백자철화끈무늬병’보다는 ‘달항아리’가 더 멋들어지지 않습니까? 역사에 나오는 도자기 가운데 제일 멋들어진 이름일 것입니다. 원래부터 달항아리라고 한 것은 아니고, 화가 김환기 선생과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항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달항아리’로 굳어진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도 달항아리에 매료되었던 모양입니다. 김 소장님은 알랭 드 보통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 나온 말을 인용합니다.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다.

 

 

그렇지요. 달항아리를 자세히 보면 순백의 하얀색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흰색이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달항아리는 한 번에 빚지 못하여 반원형으로 빚은 두 개의 자기를 아래, 위로 얹어서 둥그런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력이 작용하면서 완전한 원형은 아닌데, 그게 또 그렇게 멋있네요.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달항아리에서 겸손의 미를 느꼈군요. 오늘날 미술계에도 달항아리를 작품의 소재로 한 미술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최영욱 작가는 모양과 색은 달항아리이지만 달항아리 표면에 고려청자처럼 실금을 입힌 것이 특색이더군요.

 

김 소장님이 제가 좋아하는 백자철화끈무늬병과 달항아리 이야기를 하셨길래, 저도 입이 근질근질하여 떠들어 보았습니다. 언제 다시 백자철화끈무늬병과 달항아리를 보기 위해 박물관 나들이 나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