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눈이 많이 온 날 둘레길을 걷다가 눈을 사진에 담아 보갰다고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작동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좀 가다가 보니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어디서 떨어트렸을까? 잘 생각이 안 난다. 앞서가는 부인에게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다. 칠칠치 못한 남편으로 다시 추인받는 것이 싫어서이다. 그다음 날 같은 길을 걸으며 살펴보았는데 분명이 떨어트렸을 것으로 생각되던 곳에서 혼자 몰래 찾아도 안 보인다.
다시 다음 날 아침 산책을 하려 장갑을 챙기다 보니 그렇게 짝을 잃고 외롭게 있는 장갑이 세 개나 된다. 그 가운데 하나, 짝없는 것만을 끼고 산책길에 가면서 부인에게 실토한다. 외톨이 장갑이 세 개나 되어 그 가운데 하나를 끼고 나왔다고. 그제야 부인이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묻기에 대충 그저께 어디쯤에서 잃었다고 했더니 길을 올라가면서 다 훑어보다가 내가 생각했던 곳 조금 앞에서 누군가가 주워서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은 장갑 한 짝을 발견하고 이거 아니냐고 한다. 보니 맞는다. 이거 참. 기가 막힌다. 내가 보면 안보이고 부인이 그걸 보고 찾아내다니. 진짜 놀랐다.
사실은 이번만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도 미처 찾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찾아주고 알려준 것이 얼마였던가. 비로소 이 글을 통해 세상에 고백하는 것이 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혼자 왔으면 놓칠 일이 많았을 것을, 둘이 같이 살아오면서, 서로가 도와주었기에 이 길을 이만큼이라도 잘 올 수 있었다는 뜻이 된다. 남자란 존재가 본질적으로, 혹은 성격적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밖으로 돌아다니며 뭔가를 얻어와야 하는 사명감(?) 때문에 제대로 챙기지 못한 평소의 삶을 곁에서 챙겨주고 채워준 것이 동반자가 아니었던가? 이 길을 혼자 걸어왔다면 얼마나 실수가 잦고 허접스럽고 밤은 쓸쓸했을까?
그렇게 저렇게 4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다음에야 옆에 있어 준 동반자의 값어치를 알게 된다. 고마움을 알게 되니 비로소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며 쌓인다. 이것을 일컬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 그것은 오랜 기다림 강물과 같이 흘러
마음 가득히 넘치는 기쁨 멈추지 않는 행복
사랑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네
사랑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네
사랑 혼자선 이룰 수 없는 오~~ 사랑이여♬
.... 박인수 노래 <사랑의 테마> 중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온갖 이유로 혼자 사는 것을 정당화하고 이게 편하다고 하고, 배신 않는다고 사람 아닌 다른 반려를 끼고 사는 것을 많이 보지만, 진정으로 사람은 원래 혼자만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사람의 동반자가 필요한 것인데, 둘이 같이 살며 새로운 생명을 낳고 기르는 삶을 겁을 내고, 그것을 회피하며 사는 분들은 절대로 느끼거나 알 수 없는 세상이 매 순간 펼쳐지고 있음을 요즘 실감하게 된다.
짝을 찾아서 장갑을 같이 껴야 추위를 막을 수 있고, 외톨이가 된 장갑은 아무리 끼려고 해도 그게 안 맞는 것인데, 점점 외짝 장갑처럼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저렇게 소복이 눈이 지붕을 덮은 저 아파트 밑의 집마다 그렇게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뭐 혼자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이렇게 춥고 눈이 오는 계절에는 혼자 사는 집이 둘이 같이 사는 짐만큼 따뜻할 수가 있겠느냐며 공연히 솔로를 택하는 분들을 걱정하게 된다. 우리가 늘 말할 때 젊어서야 뭐가 걱정이겠느냐고 하는데, 사실 나이 들어서 혼자 사는 것이 궁상맞고 쓸쓸하니 둘이 젊어서부터 같이 사는 삶을 택하고 견디자는 것이고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인데, 그게 아니라고 겁을 내고, 차라리 혼자 감당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고 이런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방송되니, 안타까운 것이다. 이런 솔로의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던 프랑스 사람들이 한 세대를 지나고 나서는, 혼인이라는 제도가 문제라면 그 제도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때가 언제 올 것인가, 그때 가서 독신으로 살아온 것을 후회해도 그것을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에서 바라듯) 되돌아갈 방법이 없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눈 내리는 날 아침 길에서 다시 찾은 장갑 한 짝,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된 동반자의 소중함을 이렇게 귀띔하여 드리고 싶은 것이다. 옛말에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했나, 손바닥 하나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손뼉 쳐도 박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하려 해도 혼자로는 인생의 진정한 기쁨의 환호는 나올 수 없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두 손을 주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눈 내리는 날 겨울 숲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일 터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