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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행복한 것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얼마 후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미스 나, 결혼한다고 했지? 내가 오늘은 미스 나에게 어떻게 살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줄게.”

“정말이에요? 기대되는데요.”

 

라디오에서는 엉뚱하게도 최희준의 엄처시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첫 아일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차는 중부고속도로에서 진천나들목(IC)으로 빠져나갔다.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얼마간 달리니 커다란 건물 몇 동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입구에는 ‘꽃동네’라고 쓰인 돌간판이 있었다. 그 위쪽에는 커다란 돌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현관에는 앉은뱅이 할아버지가 손가락도 없는 손으로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습은 흉해도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미소로 두 사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안내원을 따라 건물을 둘러보았다. 안내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꽃동네는 1976년 최귀동 할아버지와 무극 성당의 오웅진 신부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 끝에 정신병을 얻었고 고혈압, 동상까지 겹친 중환자가 되었습니다. 환자가 된 할아버지는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40여 년 동안 남는 밥을 얻어다가 구걸할 수도 없는 불쌍한 걸인들을 돌보던 중, 오웅진 신부님을 만나 오늘의 꽃동네가 있게 되었답니다.”

 

방마다 끔찍한 모습의 할아버지, 할머니 병신들이 살고 있었다. 그분들은 육체는 불구여도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그분들의 마음은 평화로운 것임이 틀림없다. 꽃동네에 들어오려면 가족은 물론 연고자가 없어야 한단다. 거기에 더하여, 혼자서 밥을 구걸할 수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히 버려진 걸인이어야 한단다.

 

현재 꽃동네에 수용된 인원이 1천6백 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돕는 후원회원이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있다고 한다. (필자 주: 꽃동네 누리집 주소 www.kkot.or.kr 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추가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후원회원이 되려면 한 달에 1,000원 이상의 회비를 내면 된다고 한다. 주말에는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많이들 와서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준단다.

 

미스 나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없이 안내원을 따라다녔다. 미스 나의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영화에나 나올듯한 그런 광경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불구 노인들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다시 사무실에 들러 ‘꽃동네’라는 유인물과 은행지로용지가 든 봉투를 받아 들고 나왔다.

 

중부고속도로를 따라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김 과장이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 돈 있는 사람, 돈 없는 사람, 얼굴이 예쁜 사람, 못생긴 사람, 환경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등등 많은 사람을 만났어. 그렇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사는 사람은 불과 다섯 손가락으로 세기가 힘들 정도로 적었어. 꽃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표정은 어떻던가? 그들이 불행해 보이던가? 행복해 보이던가? 행복은 결코 돈이나 미모, 권력이나 학력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해. 어떻게 보면 신(神)은 모든 인간에게 행복할 수 있는 자질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해. 내가 깨달은 결론으로는, 사람은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행복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가진 적은 것이라도 남과 나누려고 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야.”

 

서울에 가까워오자 김 과장이 존댓말로 말했다.

“자, 이젠 예쁜 아가씨와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져 오네요. 아무쪼록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빕니다.”

 

아가씨는 줄곧 말이 없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아가씨를 잠실 아파트에 내려 줄 때는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김 과장은 차에서 내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집과 ‘축 결혼’이라고 쓰인 흰 봉투를 주면서 말했다.

“아가씨 결혼식에는 아무래도 못 갈 것 같고. 이건 결혼 선물과 축의금입니다. 작지만 받아 주세요.”

“김 과장님…”

 

 

아가씨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가씨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