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1월 29일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서는 한 예술가의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였던 고 백남준 님이 2006년 1월 29일에 세상을 뜨셨으니 벌써 18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행사는 예년보다도 더 조촐하게 열린 것 같습니다. 점차 관련 소식도 언론매체들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봉은사의 법왕루에 차려진 추모제단에서 유족과 친지, 백남준 아트센터 관계자 등 많지 않은 추모객들이 생전의 예슬업적을 돌아보며 선생이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을 차분히 아쉬워했습니다.
1932년생인 백남준 선생에게 있어 올해는 좀 더 특별한 해입니다. 선생이 우리나라에 처음 제대로 소개되고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충격을 준 지 만 4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1984년 새해가 밝은 뒤 1월 1일 자정을 넘은 시각(정확히는 1월 2일 새벽 2시)에 우리나라는 KBS1텔레비전이 중계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텔레비전 종합예술축제를 보느라 눈을 비빈 분들이 많았고 1월 2일 날이 밝으면서 도하 언론들은 이 프로그램의 시청 소감 등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일찍이 「1984」란 소설에서 1984년이란 시점을 상정해 그때 발달한 전자문명에 의해 텔레비전이 개인의 일상생활을 다 감시하고 지배하는 암울한 사회를 묘사했는데, 한국인 예술가 백남준 씨가 나라 밖에서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해학으로 여러 나라를 위성으로 연결하며 첨단의 새로운 예술을 펼치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가 제시한 비디오 예술을 통해 예술의 개념과 역할, 현대사회에서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영상과 메시지, 거기에 등장한 수많은 세계적인 일류 예술가들이 펼친 세계는 우리의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비디오 예술은 우리들의 중요한 성찰과 전환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의 예술관은 과거의 평면적인 것에서 입체적인, 시간적인, 미럐지향적인 4차원의 공간예술로 선회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주어, 미술과 음악, 무용 등이 결합하는 총체적 예술의 씨앗이 되어 세계 무대로 달려갔습니다. 마침내는 그것이 우리가 키워 온 전자산업을 바탕에 깔고 음악과 음식, 복식, 관광 등으로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음을 이제 우리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 선한 촉매로 백남준 씨가 기획하고 연출한 위성예술축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만 40년이 된 해입니다.
그런데 40년 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고 백남준 씨를 알게 된 사람들도 이제는 더 는 그를 기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도 이제 장년층에서 노년층으로 접어들었습니다. 2006년 백남준 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백남준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고, 그 사이 우리나라와 세상이 너무 많이 발전해 백남준이 열어준 예술세계는 이미 상식으로 변했기에 굳이 그를 기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의 주류가 된 40대, 50대만 해도 백남준이란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프로그램을 직접 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백남준이 공개행사장에서 남의 옷을 자르거나 악기를 부수고, 텔레비전 수상기에 이상한 화면이 나오게 하거나 그 자체를 눕히고 쌓고 해서 입체물을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프로그램은 현대사회의 소통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예술적으로 다룬, 그 자체로서 살아있는 종합예술이었고 그 의미는 21세기에 들어서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백남준은 지구상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텔레비전으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예술을 함께 즐기는 작품을 만들었고 발달한 위성통신망을 활용해 그의 꿈과 희망을 담았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방식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이었고 그것은 현대문명을 다시 보게 하여 기술문명 속에서 메말라가는 인간들의 정서를 회복하려는 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먼저 파악한 미국인들이 백남준을 미국의 자산으로 확보하기 위해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에 그의 아카이브를 사들이고 그를 위한 전시회를 제일 먼저 열어주었고 그 뒤 그에 대한 대규모 회고전이 미국 영국 등에서 잇달아 열렸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그를 기억하는 활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대중들의 예술혼을 일깨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40돌을 맞아 봉은사의 추모열기가 차분했던 것도 그런 시대적인 상황의 반영일 것입니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국에서 연구하고 그를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는 그의 기념비적인 위성 생방송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이 40돌이 되는 해를 맞아 3월부터 특별 기획을 펼칩니다.
봄을 여는 첫 전시 '일어나! 2024년이야'(2024년 3월21일~2025년 2월23일)가 그것인데요, 전시 제목 '일어나! 2024년이야'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라이브 퍼포먼스로 참여한 미국 밴드 오잉고 보잉고의 노래 제목 '일어나! 1984년이야'를 올해 연도로 재설정한 것입니다. 전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더욱 입체적으로 연구ㆍ조망하며 2024년의 응답으로 행성적 연대와 평화의 값어치를 환기합니다. 얼터너티브 K팝 그룹이 평화의 마음을 담은 음악과 춤ㆍ영상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같은 날 개막하는 '빅브라더 블록체인'(2024년 3월21일~8월18일)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돌을 맞아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현대 예술을 다시 점검합니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와 같은 가상의 디지털 환경과 인공지능으로 대두되는 기술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오늘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작품이랍니다.
40년이란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백남준은 단순한 천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외국의 평가에는 '그가 비디오예술이란 장르의 창시자'였다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예술 장르라는 것은 어느 때 누군가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 그것이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사람의 창의력과 땀방울에 의해 이뤄지는 예술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백남준은 '비디오 예술'이란 장르를 자기 손으로, 자기 아이디어에 의해, 당대에 만들었기에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것은 천재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시대를 내다보는 창의력과 창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남준은 현대 세계의 창의력과 창조력의 횃불이었다는 것이고, 그러한 백남준이 일본인이나 독일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자랑이고, 우리 자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백남준을 우리나라에서 멀리 외국으로 보내고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며 그의 사상의 기초를 닦은 곳은 서울입니다. 그러나 서울 어디를 가나 그를 알려주는 아무 표지도 시설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그의 생가터에 있던 작은 미술관도 예산을 아끼려는 서울시에 의해 문을 닫을 뻔하다가 여론의 반발로 겨우 남겨 놓았습니다.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기 위한 백남준 아트센터가 있지만 서울에서 먼 용인에 있어서 그를 기억하는 외국인들이나 우리 일반시민들이 가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백남준이 만든 최대의 조각이라고 하는 <다다익선>도 다시 붉을 밝히기는 했지만 늘 켜져 있지는 않아 겨울엔 을씨년스럽습니다. 꼭 동상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가 자란 서울 시내 중심가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를 기억하고 내세울 시설이나 기념물을 세울 법도 하건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뿐더러 다른 곳에도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나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있으나, 한국인으로서 세계에 한국의 존재를 알린 으뜸 예술가인 이 백남준을 기억하려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1932년생이어서 곧 그의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데, 다른 나라라면 자국 출신의 예술가를 기리기 위해 정부나 민간에서 큰마음을 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어느새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송 40년이 지나갑니다.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그를 기억할 아무런 기념물도 볼 수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는 잊히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로서의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이 아니라 이별을 뜻하는 "안녕, 백남준 선생님!"입니다. 백남준은 본래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음악가였고 거기에다 기술을 결합하고 매체를 합성하는 종합예술가이자 미래예언가가 되었는데, 지금 그에 대해서는 미술 쪽에서 작품 가격이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걱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그를 밀봉해 버렸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
음악 미술을 넘어 매체와 소통, 전자문명의 미래를 함께 열어간 그의 창의성, 그의 창조력을 자라나는 후대들에 알게 해주고,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40년 전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송으로 날밤을 새운 전직 방송인들은 말하고 싶답니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