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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등대가 반가운 이유

전국 바닷가 이름 없는 등대들의 헌신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3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등대 옆에서 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하품을 참으면 기다렸는데도

등대도 나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등대는 나보고

'등대' 같은 놈이라고 했을 거다

                        ...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이생진​

 

이생진 시인은 말한다. 등대는 외로운 사람의 우체통이라고. 등대는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어두는 우체통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나 하고 등대를 찾아가고 별에게 보낼 편지를 넣으려고 등대를 찾아간다고.

 

 

어느 날 아침 등대를 가까이서 만났다. 건너편 바다 끝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높이 60센티가 넘는 해일이 밀려 온 동해 묵호항에서였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캄캄한 밤을 지나고 보니 나도 등대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보는 등대가 반갑다.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묵호항 등대 앞에는 별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우체통이 있었다. 그 앞에 끝없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를 가르고 해가 뜬다. 그 해를 위해 어두운 밤을 밝혀준 것이 등대다.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캄캄한 밤을 사는 듯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서로 이웃을 못 보고 외롭게 살다 보니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근래에 많은 분이 생을 스스로 던지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외로운 것은 사람이지, 등대는 아닌 것 같다. 등대가 보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외로울 것인가?

 

옛날처럼 등대의 불빛만을 의지하고 배가 다니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국 어디의 등대도 개성이 있는 자태와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모두 미인이 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등대에 바치는 사랑과 정성을 통해 이미 등대는 외로움을 극복했다. 오로지 사람들만 여전히 외로운 것이다. 묵호항 등대 앞에 전국의 아름다운 등대들이 함께 호위하듯 둘러서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구나.

 

 

부산 기장의 서암항 등대의 저 포근한 자태를 보라. 정에 목마른 어른, 아이에게 젖을 우려하는 것 같다. ​​

 

부산 기장 칠암항의 방파제 등대는 또 어떤가? 험한 파도는 내가 막아 줄 테니 떠오르는 해와 기쁨을 나누리고 말하는 것 같다.

 

 

감포항의 등대는 황룡사 9층탑의 기운을 받아 저 동해를 지켜주는 용이 솟구쳐 올라온 듯하다

 

 

강원도 어달항의 등대는 스스로 어두운 바다를 밝혀주는 남포불이 되고 있다.

 

 

불을 밝힌 지 110년이 되는 서해 어청도의 등대는 그야말로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었구나

 

 

어쩌면 우리는 외로워서 등대를 찾지만, 등대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왜 남의 등불을 찾아가는가요?

스스로가 등불이 되세요.

그 불빛을 남들에게 나눠 줘 보세요.

저를 보면 아시잖아요?

하나도 외롭지 않답니다."

 

 

저녁 바다는 우라를 숙연하게 하지만 밤새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그 공덕이 우리들의 텅 비려는 가슴을 채워준다. 그래서 아침을 맞으면 그 등대는 이제 다시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자 지난밤 외로움과 쓸쓸함, 괴로움과 아픔에 빠져 버릴까봐 내가 밤새 불을 밝혔습니다.

이제 아침에 되고 밝은 해가 떠오르고 있지요.

이 햇살의 기운을 받아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을 다시 가지세요.

저 해의 기운을 가슴 속으로 힘껏 들여마시며 그 힘으로 다시 하루를 멋지게 살아보세요

그래야 우리도 행복하답니다.“​

 

묵호항 등대를 호위하며 등대 기단의 벽을 지키고 있는 전국의 등대 사진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사실은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서 있는 등대들, 유명하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는 전국 바닷가의 이름 없는 등대들의 헌신이 고맙다는 뜻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