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랜만에 어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인사동 한정식집의 조용한 방에 들어가니 벽 위에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현대 우리 서단의 최고봉이었던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 ~ 2006) 씨가 경신년 신춘에 쓰신 것이다.
경신년은 1980년이니 일중 선생이 육순에 쓰신 것으로 네 글자 가운데 세 번째 글자를 잘 모르겠다.
먼저 나는 그것이 '한가지' 혹은 '같다'는 뜻을 가진 '동(仝)'이란 글자 같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동조하면서 손말틀(휴대폰)을 두들기더니 `仝`의 옛 글자가 저렇게 생겼단다. 그래서 일단 동이란 글자로 보고 '양소동진' 네 글자의 뜻을 함께 유추해 보니 '소(素)를 기르는 것이 진(眞)과 같다'라는 식의 풀이가 나온다. 여기서 소(素)는 소박함, 본래의 것일 터이니 욕심 없고 꾸미지 않고 참된 본 바탕 정도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래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 참된 것이라는 해석이 된다. 그렇게 뜻을 새기면서 일중 선생의 멋진 예서(隸書) 글씨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다가 집에 와서 아무래도 이 문장이 그냥 튀어나온 것이 아닐 것 같아서 인터넷 사전을 뒤져보니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의 글에 이 문장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혜강(嵇康, 223~262)은 완적(阮籍)과 더불어 죽림칠현(중국 진나라 초기에 무위ㆍ無爲 사상을 숭상해서 죽림에 모여 이야기를을 나누던 일곱 선비)의 한 사람으로, 사상가이자 문학가였고 또 금(琴)의 대가였다. 젊어서 당대의 시대풍조에 힘입어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좋아하였고 항상 금(琴)’을 연주하고 ‘시(詩)’를 노래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금(琴)이란 악기는 우리가 흔히 거문고로 풀지만 우리나라의 거문고는 6줄인데 견주어 중국은 7줄이다. 또 거문고처럼 줄을 떠받치는 괘가 없이 악기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바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흔히 고금(古琴)이라고 부른다.
혜강은 이 고금, 곧 중국거문고의 대가였다. 당시 유명한 권력자 사마의(司馬懿,179~251)의 아들로서 권세가인 사마소(司馬昭,?~265) 쪽 사람들은 이러한 당대의 유명인사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이를 거절하자 혐의를 씌워 그를 처형하기에 이르는데, 낙양의 동쪽에 있는 형장으로 끌려 나와서도 당당했고, 마지막으로 금(琴)을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여 애절하고도 비통한 곡을 연주하는데 이것이 금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광릉산(廣陵散)’이란 곡이다.
연주를 마친 혜강은 금을 내려놓고는 “예전에 누가 나를 따라 이 곡(曲)을 배우고자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광릉산'이 오늘에 이르러 끊어지게 되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런 혜강이 친한 벗인 여안(呂安)을 위해 글을 썼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감옥에서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유분시(幽憤詩: 가슴에 깊게 쌓인 울분을 노래한 시)’를 지었는데 이 속에 '양소전진(養素全眞)'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는 유분시의 앞 부분에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志在守樸(지재수박) 養素全真(양소전진)"이라고 했는데 한자로만 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박(樸)을 지키고 소(素)를 길러 참을 지키는 데 전념했다"라는 뜻이 된다. 樸(박)은 곧 박(朴)으로 이 문장 전체는 "소박한 마음을 지키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전념하며 살아왔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점심식사 자리에서 본 그 문장은 '양소동진'이 아니라 '양소전진'이 되는 셈이다. 어떻든 뜻은 사실 비슷하고 중요한 것은 '양소(養素)'라는 개념이다. 네 글자의 핵심은 소박한 마음을 기르고 지키는 것이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이리라.
그 뜻이 좋다 보니 옛사람들도 네 글자보다는 '양소'라는 두 글자만을 빌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신라 말의 최치원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친구가 "이미 지영(持盈)의 도를 즐겨 행하심은 물론이요, 실로 양소(養素)의 기틀을 다지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하여 넘치지 않는 안분의 도를 지키며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학자며 문인으로 퇴계의 조카사위인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은 자신의 문하생에게 시를 써주면서
俗情飜逐物華新 세속 물정이 도리어 화려함을 좇아서
擧世滔滔喪本眞 온 세상이 도도하게 참된 본성을 잃었네
養素全天騷客事 소박함을 기르고 참됨을 지켜 세상일을 멀리하자
光塵何必更隨人 굳이 티끌세상에서 남을 따를 필요가 있으랴
.... 《송암집》 별집 제1권 / 시(詩) 1
라고 하였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 서산마을에 가면 안동김씨의 대종택이 있는데, 종택의 이름이 양소당(養素堂)이다. 1500년 봄, 조선조 성종 때 사헌부 장령(掌令)을 지낸 적옹(積翁) 김영수(金永銖,1446~1502)가 목조 기와 팔작지붕으로 집을 지었는데, 후손인 동야공(東埜公) 김양근(金養根·1734~1800)이 "소박하고 순수함을 길러서(養素), 풍속(風俗)을 순박(淳朴)하게 하고 가문의 기질(氣質)을 질실순고(質實純古)하게 만들겠다."라는 염원을 담아 이름을 양소당이라고 붙였다.
이 집은 성종 때 대학자요 정치가로 대사간을 지낸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21)이 안동김씨 처음으로 대과에 급제한 곳이고, 김계행은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 우리 집안에는 세속적인 의미의 보물은 없다. 있다면 오로지 청백이라는 정신적인 보물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여 평생 선비로 사는 삶을 살아 자랑이 되고 있는데 후손이 이러한 전통은 곧 "양소(養素)"의 정신이기에 양소당이란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 가면 옛 선산도호부의 동헌이 있던 곳에 양소루(養素樓)라는 유명한 누정이 있었다. 그 뜻은 안동 양소당이란 이름에 담긴 생각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조선 말기의 선비인 유문(幼文) 이위(李偉 ?~1872))는 스스로 호를 양소자(養素子)라고 하였기에 친구인 한장석(韓章錫)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유문은 일찍이 양소자(養素子)라 자호(自號)하더니, 정말로 평소에 양성(養成)하는 바가 있었도다. 아아, 남들이 알아주지 않음이 유문에게 무슨 흠이 되겠는가? 내가 보건대, 옛날의 군자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면 하늘에 알려졌다. 유문은 인륜에 독실하고 평소의 행동이 신중하며, 마음을 존양(存養)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심하며 남과 경쟁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하늘에 알려졌을 것이다.
... 《미산집》 제11권 / 애사(哀辭)
이렇게 보면 '양소전진'이란 말은 그 앞의 '지재수박'과 더불어 사람이 본래의 성품을 잘 찾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어찌 보면 아주 쉬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전번역원에서 이 부분을 주석으로 해석한 것을 보면
양소는 소질(素質)을 기른다는 뜻으로, 본래의 성품을 닦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의 글에 “뜻을 포박(抱樸)하는 데에 두고, 소질을 기르며 진성(眞性)을 보존한다.〔志在守樸 養素全眞〕”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23 幽憤詩》
라고 해서 여기서는 해석이 원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풀이하면서 "뜻을 순박함을 지키는데 두고, 소박을 길러 참됨으로 온전히 채운다"로 설명하고, 더욱 간단하게는 「自分の心を大切にする(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 설명은 너무 압축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요컨대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갖고 살아나가라" 하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왜 굳이 이런 설명을 하는가 하면 지난해 미국 갔을 때 초등학교 앞에 "Be kind to your Mind (마음에 친절하세요)" 라는 문구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문장에 담긴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국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 미국 사람, 일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 때 남의 것을 넘보고 비교하고 거기에 좌우되거나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참된 마음을 바로 보고 그 참된 마음을 지켜 평생을 잘 살아라" 하는 뜻인데, 그것을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강조하고 있고, 우리 선조들도 그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이 된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본 한문 문구 넉 자의 뜻을 생각하며 먼 길을 찾아 더듬어 보았다. 우리 삶의 비결은 간단하고 쉽다. 그것을 옛날 중국 사람은 한문으로 표현했고, 우리 서단의 최고봉으로 학문도 많이 하신 일중 김충현 선생은 그 많은 한문 가운데서 하필 그 네 글자를 뽑아서 써주셨고 그것을 후학들이 보고 그 뜻을 새기며 삶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애초에 동(仝)이 아닐까? 하던 글자를 전(全)으로 바꾸어 읽으면서 문장의 참뜻을 되새긴다. 그야말로 어느 분이 지적해준 그대로 '불원복(不遠復)', 곧 "혹 어긋난 것이 있어도 멀리 가지 않고 바로 고치고 돌아온다"다. 문구 하나로 공부하면서 우리 삶을 되돌아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