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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마개’와 ‘뚜껑’

[우리말은 서럽다 22]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말에서는 풀이말을 으뜸으로 삼아 종요롭게 쓴다. 말의 뿌리와 뼈대 노릇을 하는 풀이말이 맨 뒤에 자리 잡고 앉아서 앞서 나온 여러 말을 다스리고 거느린다. 그러므로 맨 나중에 나오는 풀이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앞에 나온 여러 말을 아무리 잘 들어도 헛다리를 짚는 수가 적지 않다. 인사말을 보더라도 서유럽 사람들은 “좋은 아침!”, “좋은 저녁!”같이 이름씨로 그만이고, 이웃 일본 사람들은 “오늘 낮은?”, “오늘 밤은?” 같이 풀이말을 잘라 버리고 쓰지만, 우리말은 반드시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같이 풀이말로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말 이름씨 낱말은 움직씨나 그림씨 같은 풀이말에서 탈바꿈해 나온 것이 많다. ‘마개’니 ‘덮개’니 ‘뚜껑’이니 하는 낱말도 모두 풀이말로 쓰이는 움직씨에서 탈바꿈한 이름씨다. ‘마개’는 ‘막다’라는 움직씨의 줄기 ‘막’에 ‘애’가 붙어 이름씨 낱말이 되었고, ‘덮개’는 ‘덮다’라는 움직씨의 줄기 ‘덮’에 ‘개’가 붙어 이름씨 낱말이 되었다.

 

이럴 적에 ‘애’와 ‘개’는 다 같이 ‘~에 쓰는 무엇’이라는 뜻의 이름꼴 씨끝이다. 그래서 ‘마개’는 ‘막는 데에 쓰는 무엇’이고, ‘덮개’는 ‘덮는 데에 쓰는 무엇’이다. ‘놀다’에 ‘애’가 붙어 이루어진 ‘노래’는 ‘노는 데에 쓰는 무엇’이고, ‘베다’에 ‘개’가 붙어 이루어진 ‘베개’는 ‘베는 데에 쓰는 무엇’이며, ‘지개’(표준어를 ‘지게’로 잡았다.)와 ‘집개’(표준어를 ‘집게’로 잡았다.)는 ‘지다’와 ‘집다’에 ‘개’가 붙어서, ‘지는 데에 쓰는 무엇’과 ‘집는 데에 쓰는 무엇’인 것과 마찬가지다.

 

‘마개’와 ‘덮개’와 ‘뚜껑’은 어떻게 다른가? 꼬집어 대답하기 어려울 듯하지만, ‘마개’와 ‘덮개’는 그 뿌리인 움직씨 ‘막다’와 ‘덮다’를 생각해 보면 대답은 한결 또렷하다. 지금은 ‘막다’의 뜻이 아주 넓어졌지만, 본디는 뚫어진 구멍으로 뭔가가 밀고 나오거나 밀고 들오는 것을 구멍 안으로 메워서 들오거나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노릇이다. ‘덮다’는 가만히 있는 무엇을 바깥으로 감싸서 막아 주는 노릇을 뜻한다.

 

 

그러니까 병이나 항아리처럼 아가리가 구멍인 것에다 안으로 끼워 막아 주는 것이 ‘마개’고, 항아리든 독이든 바깥으로 감싸서 막아 주는 것이 ‘덮개’다. 그러므로 덮개는 병이나 항아리같이 아가리가 구멍인 것보다는 아가리가 큰 통이나 독 같은 것에 더욱 어우러지고, 밖에서 오는 벌레나 짐승, 빛이나 볕, 눈이나 비, 심지어 바람 따위를 막으려는 것에 두루 쓰인다. 그래서 마개는 막았다가 뽑아야 하고, 덮개는 덮었다가 벗겨야 한다.

 

‘뚜껑’은 아가리를 바깥으로 감싸는 모습에서나 밖에서 오는 무엇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려는 구실에서나 덮개와 매우 비슷하다. 뚜껑은 본디 덮개와 함께 하나의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뚜껑과 덮개가 함께 자라난 본디 뿌리는 움직씨 ‘둪다’였다. 그것이 뒷날 ‘덮다’로 바뀌었다. ‘덮다’로 바뀌기 이전에 ‘둪다’의 줄기 ‘둪’에 이름꼴 씨끝 ‘엉’이 붙어 ‘뚜벙’이 되었고, 뚜벙이 다시 ‘뚜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둪다’가 ‘덮다’로 바뀐 다음에 거기서 ‘덮개’가 나왔다.

 

그래서 뚜껑은 덮개와 같은 핏줄을 나눈 아재비와 조카 사이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쓰임새에서도 뚜껑은 덮개처럼 아무 데나 두루 쓰이지 않고, 살림살이에서 훨씬 긴요한 솥이나 그릇, 상자 같은 가구에만 주로 쓰인다. 덮개는 덮었다가 벗겨야 하지만 뚜껑은 닫았다가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