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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한식(寒食) 맞아 건원릉 억새 베는 ‘청완 예초의’

구리 동구릉 내, 궁능유적본부 홍보대사 김영민 배우 참여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김용욱)는 오는 4월 5일 한식(寒食)을 맞아, 아침 9시 30분부터 구리 동구릉 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봉분을 덮고 있는 억새(靑薍, 청완)를 자르는 ‘청완 예초의’(靑薍 刈草儀)를 한다.

 

건원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로 덮여있는데,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太祖, 1335~1408년)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옮겨와 봉분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 건원릉 억새(청완) 관련 문헌 기록

- 인조실록(인조 7년 3월 19일):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청완(억새)을 사초로 썼다는 기록

- 건원능지(1631년, 능상사초편): 태조의 유명(遺命)으로 함흥에서 옮겨왔다는 기록과 한식에 예초하는 기록

 

 

예로부터 건원릉 억새는 1년에 한 번 한식날 예초(刈草) 곧 풀베기를 하였는데, 문화재청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매년 한식날에 ‘청완 예초의’를 거행하고 있다.

 

‘청완 예초의’는 봉분의 억새를 베는 ‘예초의(刈草儀)’와 1년 동안 자란 억새를 벴음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로 진행한다. 제사 뒤에는 조선왕릉 제향(祭享)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복(飮福) 행사도 함께 열린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 1월 궁능유적본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김영민이 예초의에 직접 참여해 건원릉 능침에서 예초 전 왕릉을 살피는 절차인 ‘봉심’을 수행할 예정이다.

* 고유제: 중대한 일 이전이나 이후에 일에 대한 사유를 고하는 제사

 

 

‘청완 예초의’는 당일 건원릉을 방문하는 관람객 누구나 참관할 수 있으며, 고유제에 제관으로 직접 참여하고 싶은 관람객은 3월 28일(목)부터 4월 2일(화)까지 궁능유적본부 통합 누리집(http://royal.cha.go.kr, 통합예약-조선왕릉)에서 선착순(성인 6명)으로 신청 가능하다. 더 자세한 사항은 궁능유적본부 통합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전화(☎ 031-563-2909)로 문의하면 된다.

 

(원문) ○乙亥/上晝講《書傳》于資政殿。 同經筵洪瑞鳳曰: “健元陵莎草, 無修改之時, 而今見本陵所報, 則陵前雜木着根, 漸近隨生。 太祖遺敎以北道靑薍爲莎草, 故至今莎草甚茂, 異於他陵, 今聞木根如此。 昨與大臣相議, 則皆以爲: ‘木根則不可不去, 而莎草若不足, 則雖用他莎草無妨’ 云。” 上曰: “寒食拔去蓬艾時, 不拔木根, 旣大之後, 乃欲盡改陵上, 甚不可也。 今若掘其土, 而斫其根, 還塡其土, 則其根必自死。 自古此陵不改莎草者, 其意有在, 不可改也。”

ㅇ 상이 주강에 자정전에서 《서전》을 강하였다. 동경연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

"건원릉(健元陵) 사초(莎草)를 다시 고친 때가 없었는데, 지금 본릉에서 아뢰어 온 것을 보면 능 앞에 잡목들이 뿌리를 박아 점점 능 가까이까지 뻗어 난다고 합니다. 원래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북도(北道)의 청완(靑薍)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 뿌리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제 대신들과 논의해 보았는데, 모두들 나무 뿌리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사초가 만약 부족하면 다른 사초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식(寒食)에 쑥뿌리 등을 제거할 때 나무 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가 큰 뒤에야 능 전체를 고치려고 하다니 그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흙을 파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메우면 그 뿌리는 자연히 죽을 것이다. 예로부터 그 능의 사초를 손대지 않았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