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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부처님 오신 날 생각한다

절에 가서 부처님을 보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50]

[우리문화신문=얼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 존경하던 스님 한 분을 여의었다. 이 세상에 없으니 여의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 스님은, 많은 스님이 그렇듯이, 소탈하고 명랑하고 맑으시며, 해학도 있어 만나면 즐겁고 기쁘고 깨우침이 있었다. 고승이라고 무게 잡으시는 일도 없고 방장이 되신 다음엔 선방에는 큰 거울을 걸어놓아 스님들이 스스로 들여다보라고 했고, 젊은 스님들이랑 밭에서 울력하면서 농작물을 거두어 세상에 신세를 안 지고 사는 삶을 이끄는 모범도 보이셨다.

 

스님으로 사신 지가 꼭 50년이란다. 이런 분이 있기에 우리 절은 많은 분에게 안식과 평온. 삶의 고통에서의 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꼭 부처님이 계셔서만이 아니라 이런 분들의 삶을 통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길을 현실에서 배우는 것이리라. 영결식 뒤 다비장으로 가면서 영정 뒤를 따르는 수많은 만장은 그런 신도들의 존경심과, 이제 가까이서 더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 또는 슬픔을 표현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무(無)로 돌아간다.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동안 모두가 잘 먹고 잘 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사후에도 마음이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모든 개인의 필연적인 소망이라면, 조금 더 공부하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런 점에서 싯다르타 부처가 선구자이며 스승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무언가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 지나쳐서 남의 것을 뺏으려 하고 그러다가 살인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곤 한다. 사회적으로 보면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가 커서 맨날 고생만 하다가 가야 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어떠한 것일까? 인간의 역사를 보면, 많은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을까? 모든 지식과 학문은 이 문제를 놓고 전개되어 온 것이며, 그 옛날 종교도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하여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종교에 희망을 걸고 살아왔다          ... 정종섭 《그곳, 寺. 마음과 마음 사이를 거닐다》 저자 서문 ​

 

이런 질문을 던지며 전국의 주요 절간을 찾아, 수도를 한 스님들의 족적을 더듬고 그러한 분들이 수천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뤄놓은 정신적인 광맥을 탐색한 분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헌법학자로 인정받는 분이 그사이 엄청난 탐구를 했구나. 그분이 반년 사이에 낸 두 권의 책을 읽으며 필자도 이런 고민을 함께 해보았다. 이른바 세속의 삶이란 어떠한 것이며, 세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하는 것과 세속을 떠난 삶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것이 인간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사실 우리 땅의 불교역사는 그런 불교 철인들 고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영생불사를 꿈꾸며 사는데, 이를 노려 온갖 허황된 얘기들과 주술들이 난무하고 혹세무민하는 언설들이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하였다. 이런 형편에서 백성이 진리에 눈을 뜨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자 뛰어난 불교 철인들과 지식인들이 뛰어든 진리 탐구의 길을 이 학자는 오솔길 외딴집까지 찾아가 본다.

 

그 옛날 불교가 들어오고 그 뒤에 유학(儒學)이 들어올 때 신라의 승려와 유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철학을 공부하고자 당나라로 유학가서 전력으로 공부하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새로운 지식과 철학을 공부하여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인간들이 영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제시하고자 한 열망에 가득 차 이국땅 힘든 곳에서 밤낮 없이 노력한 그들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면 그 치열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권력을 쥔 자들끼리 하루가 멀다고 큰 전쟁과 작은 싸움들을 하고, 승자는 패자를 짐승 같이 다루며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이 온전한 인간세상일 리 없다. ...월간 《고경(古鏡)》 2021년 2월 [통권 제94호]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자신들의 소유를 축복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지만 힘없는 백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에서 보면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는 것은 더 이상 믿지 못할 거짓일 터이고, 이제는 파리 목숨 같은 이 삶이 죽어서나마 극락왕생했으면 하는 가느다란 희망만이 살아있었을 것이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석가모니 부처가 가르치는 해탈만으로는 현실에서 답이 되지 않으니 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외우면 극락왕생한다던가, 미륵불이 와서 우리를 구해 줄지도 모르다'라는 구원신앙에 의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절에 대웅전과 함께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전이나 미륵을 상징하는 미륵불이 조성되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라 하겠다. 종교가 그런 힘들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기독교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의 뜻대로 살면 천국이 있다는 약속과도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헌법학자는 그러나 종교 혹은 불교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는 모순을 해결하는 답이 될 수 없음을 내비친다.

 

"현실에서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궁극에 바라는 것이라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의 모순을 해결해야 할 방책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미륵신앙이나 미타신앙에 의지하게 하는 현실의 모순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으로 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미륵신앙이든 미타신앙이든 또 메시아주의든 이는 세간법이 될 수 없고 출세간의 법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철학과 지식은 바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그 본분이 있게 된다."                                                              ... 정종섭 《그곳, 寺. 그때와 지금》 40~44쪽

 

 

평생을 그런 고민을 안고 치열한 수행의 삶을 사신 분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다. 세상의 스님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허전해진다. 우리의 절들은 갈수록 커지고 높아지고 화려해진다. 어느 절에 수만 개의 등불이 달렸다고 자랑하면 그 등불 값이 얼마인 줄 아느냐는 물음도 제기된다. 절에 달린 수많은 등불이 이런 서민들의 간절한 소원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저마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절이나 절을 찾는 분들이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보다 큰 질문, 곧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답을 같이 찾는 데 동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을 찾아 전국을 다닌 헌법학자도 그런 생각으로 봉은사 절 문을 나선다.​

 

온갖 상념에 싸여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일주문을 나서는 데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아 뒤돌아서서 미륵대불을 향해 정례(頂禮)를 하고 원(願)을 빌었다. "미륵부처님, 부처님께서 오시기를 수억 년간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오래 걸립니다. 지금 바로 이 세상에 나투어 이 중생들을 구해주소서" 응답이 왔다. "이 사람아, 자네는 헌법학자가 아닌가. 그러면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에 답을 내놓아야지 자네까지 나한테 매달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 정종섭 《그곳, 寺. 마음과 마음 사이를 거닐다》 407쪽

 

 

어쩌면 그 답은 헌법학자 혼자서 내놓을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이 종교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참된 종교인이 되어 이 현실에서 중생들을 구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자는 강력한 권유일 것이리라. 부처님 오신 날 나도 오늘 절(寺)을 찾을 것이기에 이런 화두를 아침 일찍 세상에 함께 던진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