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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에서 가장 경관이 좋다는 팔석정(八夕亭)

효석문학100리길 제1구간 답사기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 왼편으로 보이는 넓은 밭이 메밀밭이다. 효석문화제 때에는 이 밭에 하얀 메밀꽃이 가득하다. 메밀밭 사이로 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메밀은 다른 작물에 견줘 생육기간이 짧다. 일반 작물은 90~100일 성장하면 수확할 수가 있는데, 메밀은 생육기간이 60~70일 정도로 짧다. 효석문화제는 해마다 9월 초에 2번의 금ㆍ토요일 주말을 포함하여 10일 동안 열린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하여 메밀은 7월 말에 씨를 뿌린다. 9월 중순 무렵 봉평에 오면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얀 메밀꽃을 어디서나 볼 수가 있다.

 

 

길 따라 조금 걷자, 흥정천이 나타난다. 작은 정자가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하천을 따라 걸었다. 출발점에서 제1구간의 종점인 여울목까지의 거리는 7.8 km이다. 답사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중요한 지점에는 큰 기둥을 세우고 표지판을 만들어 놓았다. 고마운 일이다.

 

 

 

나중에 살펴보니 이날 단체 사진을 찍은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구도 단체 사진 찍자고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점 사진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노화 현상이다.

 

흥정천을 따라 걷는 길은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조금 걷자, 포장도로가 끝나고 오솔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누구나 걸어야 한다. 본격적인 둘레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둘레길 입구에는 초가지붕으로 정감 있는 문을 만들어 놓았다. 초가지붕 왼편 물가 쪽으로는 멋진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초가지붕 오른쪽으로는 두 개의 안내판이 효석문학100리길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좁은 초가지붕 길로 가지 않고 넓은 하천가로 걸어갔다. 두 길은 조금 뒤에 만나게 되어 있다. 흥정천 물소리를 들으며 하천 따라 조금 가다가 둑길로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하천 둑길을 따라가면 된다.

 

 

오른쪽은 나지막한 산이다. 상록수인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에도 파랗고 뾰족한 잎을 유지한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에 잎을 모두 떨어뜨린 활엽수들은 아직은 벌거벗은 모습이다. 흥정천 따라 계속 내려가자, 왼쪽에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이름은 팔석정교. 조금 더 가니 봉평에서 가장 경관이 좋다는 팔석정(八夕亭)이 나타났다. 팔석정과 평촌리에 대하여 설명하는 안내판이 두 개 세워졌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래 강릉군 봉평면 지역으로서 쑥이 많은 벌판이었으므로 봉평이라 하였는데 광무10년에 평창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근내, 쇄판동을 평촌리라 부르게 되었다. 평촌리 동편 산 기슭에 위치한 봉산서재는 율곡 이이 선생의 부친 이원수 공이 수운판관으로 벼슬을 하던 중종 때 이곳에서 18년간 거주하는 동안 사임당 신씨(1526~1549)께서 율곡 선생을 잉태하는데 이 사실을 후세에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후반부는 줄임)

 

팔석정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재임시 영동지방을 두루 살핀 후 자연경치에 탄복하여 영서지방에는 이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없겠냐는 생각에서 영서 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던 중 이곳 봉평면 (당시는 이 지방이 강릉부 소속에 이르렀다) 아담하면서도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정사도 잊은 채 8일을 신선처럼 노닐며 경치를 즐기다가 팔석정이란 정자를 세우게 하고 1년에 세 번씩 춘화(春花), 하방(夏芳), 추국(秋菊)을 찾아와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는 임기가 끝나 고성부사로 전임하게 되자 다시 이곳에 찾아와 정자를 관리하기 위하여 집 한 채를 세운 후 샘이 깊은 우물을 파놓고 (봉래고정이라 함) 주변의 바위 여덟 군데에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 석대투간(石大投竿), 석지청련(石池靑蓮), 석실한수(石室閑睡), 석요도약(石瑤跳躍), 석평위기(石坪圍棋)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서예가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특히 초서체에 능해서 조선의 4대 명필로 불린다. 내가 아직도 외우고 있는 시조 태산가(泰山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를 지은 사람이 바로 양사언이다.

 

 

 

단체 사진은 안 찍었지만, 팔석정의 경치가 워낙 뛰어나서 모두 손말틀(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평촌리 안내판을 읽어보고서 새롭게 안 사실은 봉평(蓬坪)의 첫 글자가 쑥 ‘봉’이라는 것이다. 평은 평평할 평자이니, 봉평이라는 이름은 “쑥이 많은 평평한 벌판”이라는 뜻이다.

 

 

50분 동안 걸은 뒤 11시에 의자가 세 개 있는 쉼터가 나타나 잠시 쉬었다. 이번 모임을 공지하면서 특별히 간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몇 사람이 쑥떡, 감자떡, 커피 등을 가져왔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심성이 메말라진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행동도 친절해진다. 답사를 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푸근해지나 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쉽게 마음 문을 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11시 12분에 출발하였다.

 

강 따라 걷는 길은 등산길에 견줘 험하지 않다. 물은 경사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 점점 양이 불어난다. 물이 합쳐져서 도랑이 되고, 하천이 되고, 강이 된다. 물길 따라 걷는 길은 경사가 낮아서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우리가 걷는 오솔길의 오른쪽은 야트막한 산이다. 가끔 빨리 피는 들꽃이 보였다. 내가 이날 사진을 찍은 들꽃은 현호색, 처녀치마, 괭이눈 등이다.

 

 

산과 하천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길가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두 구절을 새겨 놓은 금속판을 볼 수가 있다. 평창군에서 둘레길 공사를 하면서 만들었나 보다.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아래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개울가 물레방앗간에서

성처녀를 만나다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는 물레방앗간에서의 돌발적인 정사는 결국 달이 밝았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자기가 계획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사건이 일어나 한 사람의 일생이 바뀌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종종 본 일이 아닌가?

 

걷기에 좋은 오솔길을 벗어나자, 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났다.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는 예외 없이 100리길 표지판이 나타나서 답사하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우리는 계속 여울목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만 가면 된다.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흥정천이 다시 나타난다. 하천 둑길은 양방향 차가 비켜 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다. 길 왼쪽으로는 지난겨울 눈이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난 흥정천이 유유히 흐른다. 징검다리도 보았다. 오른쪽으로는 넓은 밭이 있다. 밭에서는 트랙터가 부지런히 농사일을 한다. 밭 사이로 드문드문 민가가 보인다. 밭 너머로 산이 보인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흥정천에 걸쳐져 있는 두 개의 다리, 금산교와 진전교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자, 콘크리트 길이 끝난다. 사용하지 않는 농수로가 보인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의견이 분분했다. 방금 지나친 진전교를 건너가 흥정천의 동쪽 둑으로 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내가 카카오맵으로 확인해 보니 효석문학100리길은 흥정천의 서쪽 둑으로 표시되어 있다.

 

내가 걸음을 빨리하여 농수로 끝 쪽으로 가 보았다. 농수로 따라 계속해서 길이 나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거칠기는 해도, 아직 풀이 나지 않아서 걸어갈 수는 있겠다고 판단되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어 모두 농수로 길을 따라 걸어왔다.

 

 

디음 이어서 보기

▶ 허생원이 쉬어가던 노루목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