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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신비롭고 아름다운 역사 속 보물 이야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역사 속 보물 이야기》, 설흔 글, 스콜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64)

견훤은 절영마를 왕건에게 바쳤다.

그런데 미래를 예언하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고 무척 후회를 했다.

‘절영마를 보내면 백제가 망한다.’

고민하던 견훤은 왕건에게 사람을 보내 돌려받기를 청했다.

왕건은 웃으면서 허락했다.

                                                                         《해동악부》 중에서

 

어떤 보물이든, 보물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이 녹아있다. 그러나 그 어떤 귀중한 보물이라도 세월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천 년이 넘는 세월과 함께 전설로 묻혀버린 보물도 많다. 그렇게 사라진 보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후대 사람들의 귀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설흔이 쓴 이 책,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역사 속 보물 이야기》는 낙랑의 자명고, 신라의 만파식적처럼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보물과 함께 그림자보다 빠른 말 ‘절영마’, 책을 으뜸가는 보물로 여겼던 책장수 ‘조신선’처럼 생소한 보물과 인물도 다룬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절영마’다. 절영마 이야기는 조선의 대학자 이익이 쓴 《해동악부》에 나온다. 《해동악부》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시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이익은 절영마 이야기를 통해 견훤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p.65)

말 때문에 백제가 망한다는 노래 부르지 마시오.

백제는 스스로 멸망한 것이지 말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오.

 

절영마는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써서 ‘그림자를 끊어 버리고 달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림자보다 빠르게 달려 ‘절영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원래 이 절영마의 주인은 견훤이었다. 견훤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친선을 다지기 위해 절영마를 보낸다.

 

그런데 절영마를 보내고 한 신하가 책 얘기를 한다. 우연히 보게 된 미래를 예언하는 책에서 ‘절영마를 보내면 백제가 망한다’라는 내용을 봤다는 것이다. 견훤은 찜찜한 마음에 절영마를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자신이 왕건 곁으로 잠깐 보냈던 사위가 죽자 절영마를 돌려주기를 청했다. 줬다 뺏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왕건은 이를 웃어넘기며 순순히 절영마를 돌려주었다. 신하들이 왜 말없이 절영마를 돌려주었는지 묻자, 왕건은 어차피 돌아올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하던 대로 절영마를 돌려받은 견훤은 “이제 후백제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좋아했지만, 절영마를 받은 보람도 없이 곧 내분으로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왕건의 예상대로 절영마의 주인은 결국 왕건이 되었다.

 

그 뒤 절영마의 행방은 전해져오지 않는다. 비록 절영마는 사라졌지만, 절영마가 자랐던 섬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바로 부산에 있는 커다란 섬 ‘영도’다. 영도는 원래 ‘절영도’였으나 오늘날에는 ‘절’을 빼고 ‘영도’라 부른다.

 

한편 책을 으뜸가는 보물로 여긴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의 이야기도 있다. 조신선은 영조 시절 책을 팔러 다니던 책장수였다. 책을 가지고 날래게 뛰어다니고, 마치 신선처럼 늙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조신선은 책을 구하는 이들이 있는 곳엔 어디든 나타났지만,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던 때가 있었다. 바로 영조가 《명기집략》이라는 책을 읽은 이희천과 그 책을 팔고 다닌 책장수 배경도를 처형했을 때였다. 《명기집략》은 그저 일반적인 중국의 역사책이고, 조선 왕실에 관한 내용은 한두 줄 잘못 적혀 있을 뿐이었는데도 두 사람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희천은 괴짜 선비로 불리던 박지원의 둘도 없는 친구였고,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박지원은 출사를 포기하게 된다. 이 사건이 잠잠해지자 조신선은 다시 나타났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보물’이라는 주제로 호기심을 끌어내는 묘미가 있다. 우리 역사 속 보물을 떠올려봤을 때 쉬이 떠오르지 않던 부분들까지 구석구석 짚어내기도 한다. 전설인 듯 실제 역사인 듯, 아련한 환상의 경계에 있기에 보물은 더욱 신비롭다.

 

이런 신비한 보물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우리 역사 속 보물을 통해 다양한 방면의 역사를 알아가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하다. 우리 역사에는 알면 알수록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