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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문학100리길' 답사기

바다에서 파도가 치듯 출렁거는 호밀밭

효석문학 100리길 제3구간 답사기 (1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는 대화천 오른쪽 둑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국도 31번 도로가 지나가는 하안미교를 다리 아래로 건너자 오른 편에 비석 2개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나는 하안미1리에서 세운 ‘88 서울올림픽 기념 비석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1리 사람들이 왜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는 권위주의적인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정부에서 비석을 만들라고 시켜서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다른 비석에는 ‘半程’(반정)이라고 세로로 비석 이름이 쓰여 있다.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반정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은 예부터 한양(서울)과 영동 지역을 이어주는 길목으로서 원주와 강릉의 중간지점 (각 200리)이라 하여 반정(半程)으로 불리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공문서의 전달이나 공무로 급히 가는 사람이 타고 갈 말을 매어두는 역(驛)과 이 길을 오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주막집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선인들의 애환이 서린 고장의 유래를 후세에 전하고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을 길이 간직하고자 이 돌을 세운다.

 

                                                           1993년 1월 10일

                                                          세운이 평창군수 김기열

                                                          글씨 일석 오이환

 

그러니까 이 길은 옛날에 강릉에서 원주 거쳐 한양 갈 때에 지나가는 국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석이 세워진 지점은 강릉에서 80km, 원주에서 80km 떨어진 거리라는 얘기다. 조선 시대에 6대 간선도로가 있었다. 그중에서 제3로는 한양에서 동대문을 나서서 양평, 문막, 원주, 진부, 강릉을 거쳐 평해에 이르는 간선도로였다. 우리가 이날 걷는 큰길은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강릉에서 한양에 갈 때에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반정을 지나 계속해서 대화천 따라 남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길 왼편에 살구나무가 계속 나온다. 아마도 마을에서 일부러 살구나무를 심은 모양이다. 이른 봄에 살구꽃이 필 때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될 것이다. 지금은 살구꽃은 다 지고 꽃이 있던 자리에 작은 살구가 열려서 자라고 있다. 내년 봄에 살구꽃 보러 이곳에 한번 와 보아야겠다.

 


 

 

걷다 보니 찔레나무가 나타났다. 찔레나무는 쉽게 말해서 장미나무의 야생종이다. 찔레나무를 종자 개량하여 장미나무를 만들었다. 하얀 찔레꽃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누군가 나더러 찔레 순을 따서 껍질을 벗겨 먹어보라고 권한다. 나는 호기심에서 찔레 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씹어 보았다. 단맛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싱싱함이 느껴지며 먹을 만하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 마땅한 간식이 없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찔레 순을 간식 삼아서 먹었다고 한다.

 

왼쪽에는 대화천이 흐른다. 오른쪽에는 넓은 배추밭, 감자밭, 파밭이 나타난다.  이곳의 지명은 '안미'다. 안미라는 마을 이름은 금당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남쪽으로 펼쳐진 넓은 뜰을 말한다. 안미에는 아직도 벼를 심는 논이 있다. 안미는 원래 지형이 기러기 꼬리 같다고 해서 雁尾(안미)라고 부르다가 농사 짓기에 좋고 쌀 맛이 좋아 安味(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하안미 사거리에서 31번 도로로 우회전하지 않고 동쪽을 향해 직진하였다. 조금 가니 하안미3리 경노당이 나온다. 경노당 왼쪽에 거사전(居士田)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옛날 이곳에 거사인 선비가 살았다고 해서 생긴 마을이름이라고 한다.

 

 

조금 가다가 우회전하여 좁은 옛길로 들어섰다. 마을을 지나자 문학길은 31번 도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차량 통행이 많아지고 안전한 길이 아니다. 안미교와 구포교를 지나고 왼쪽에 ‘거기매운탕집’이 나온다. 우리가 이날 점심을 먹을 식당이다. 일행 중 세 명은 너무 피곤하였기 때문에 식당 마당에서 쉬기로 하였다. 나머지 일행은 시끄러운 31번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마침내 큰길과 헤어져 작은 둑길로 들어섰다. 사방이 조용해진다. 이제야 둘레길답다.

 

우리가 31번 도로를 따라 걸은 구간을 카카오맵으로 측정해 보니 1.5 km이다. 이 구간은 평창강 쪽으로 데크길을 만들어야 걷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가지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창군 담당자는 참고하기를 바란다.


 

 

평창강의 왼쪽으로 이어지는 둑길은 양쪽에 벚나무가 있고,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나는 봄에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벚꽃 터널이 만들어져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정구역으로 이곳은 방림면이다. 평창강과 둑길 사이로 넓은 호밀밭이 나타났다. 호밀은 사료 작물 또는 비료 작물로 심는다고 한다. 비료 작물이란 호밀을 수확하지 않고 밭을 뒤집어서 비료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낮 1시 10분에 방림2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마을회관에서 방림농공단지까지는 가까운 거리다. 이날 둘레길 답사는 마을회관에서 끝났다. 효석문학100리길 제3구간 10km를 걷는 데에 3시간 35분이 걸렸다.

 

답사가 끝나고 우리는 거기매운탕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뒤에 우리는 호밀밭을 구경하지 못한 세 사람을 위하여 다시 평창강가에 있는 호밀밭으로 갔다. 이처럼 넓은 호밀밭을 보는 것은 모두가 처음이었다. 호밀밭 위로 바람이 불자 바다에서 파도가 치듯이 호밀밭이 출렁거렸다. 나는 호밀 물결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였다. 멋진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 호밀 물결

 

이처럼 넓은 밭의 호밀을 비료작물로 이용하지 않고 호밀빵의 원료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호밀빵이라는 단어로 나무위키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은 해설이 나온다.

 

호밀로 구운 빵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일반적인 밀빵을 흰빵, 호밀빵을 검은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밀가루의 경우 밀가루보다 글루텐이 부족해서 쉽게 부풀지 않는 특성 때문에 빵처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밀가루를 일정 비율 섞어서 반죽해 굽는 경우가 많다.

 

여러 유럽 나라들에서는 지역마다 호밀 함량과 들어가는 재료가 다른데, 한국에서 알고 있는 호밀빵은 독일식이나 러시아식이 많다. 러시아 사람들은 호밀로 만든 흑빵이 주식 중 하나다. 흰빵과 달리 진한 호밀 냄새와 시큼한 맛을 자랑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흑빵을 고향의 맛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한때 웰빙 바람이 불면서 호밀빵이 유행하기도 했다. 호밀빵을 사용한 햄버거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본고장 호밀빵처럼 호밀 함량이 높은 것이 아니라 밀빵에 호밀을 아주 살짝 첨가했을 뿐이다. 진짜 현지식 호밀빵을 도입하면 한국인들이 입도 대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현지화를 해서 그냥 밀빵과 다를 바 없었기에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다.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아닌 몇몇 개인 베이커리 등에서는 30~100% 호밀로 만든 진짜 호밀빵을 팔기도 하는데, 한국의 호밀 생산량과 수입량이 워낙 적은 관계로 무게가 같은 밀빵보다 훨씬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호밀빵이 유행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