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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정의감 있는 법관, 자제하는 검사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 양삼승, 까치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양삼승 변호사가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양 변호사님은 1999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으신 뒤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대한변협 부협회장, 영산대 석좌교수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고교 11년 선배이시지요.

 

 

저번에,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선배님의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보니 선배님이 그동안 변협신문과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언론에 기고한 글, 한국법학원 주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등 주옥같은 글을 모아 책을 내셨더군요.

 

선배님의 아버님은 양회경 전 대법관이십니다. 대법관님은 1971년 6월 국가배상법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할 때 위헌 의견을 내셨지요. 그리고 유신 선포 이후 그때 같이 위헌 의견을 낸 8분의 대법관님들과 함께 타의로 옷을 벗어야 했지요.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이후 많은 위헌결정이 내려진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도 1992년에 위헌제청을 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여 위헌결정을 내린 것이 있더군요. 그 당시 선배님은 형사부 부장판사로 있을 때인데, 한 사건 결심공판에서 공판 관여검사가 재판부에서 집행유예를 할 낌새가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징역 10년을 구형하더랍니다. 선배님은 10년이라는 구형에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었다고 합니다.

 

검사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요? 당시에는 검사가 10년 이상을 구형한 사건에서는 판사가 집행유예를 선고하더라도 검사가 상소를 하면 즉시 석방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공판검사는 피고인이 석방되지 못하도록 10년 구형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판사가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피고인은 그대로 석방되는 것이지, 검사 구형량에 따라 석방 여부가 좌우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배님은 위헌제청을 하셨고, 당연히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을 선언한 것이지요. 책을 보니 결국 선배님은 이와 같은 위헌제청과 권력기관의 심지를 건드리는 글을 쓴 것 등이 주요 원인이 되어 대법관에 대한 뜻을 접고 변호사의 길로 나섰더군요.

 

책에 나오는 글 가운데 ‘형사사법 게임의 법칙 13가지’라는 글은 제가 전에 변협신문에 실린 이 글을 보고, 여러분께 한번 보시라고 이메일에 첨부파일로 보냈던 글입니다. 선배님이 하버드 대학의 앨런 M, 더쇼비츠 교수가 쓴 <최고의 변론>이란 글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재인용해 봅니다.

 

법칙 1. 형사재판의 거의 모든 피고인은 사실에 있어서 유죄이다.

법칙 3. 헌법을 따르는 것보다는, 헌법을 위반함으로써, 실제 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훨씬 쉽다.

법칙 6. 실제 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게 하기 위하여, 경찰관들이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도록, 많은 검사들은 암묵적으로 경찰관들을 부추긴다.

법칙8. 대부분의 1심 판사는, 경찰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신뢰하는 체한다.

법칙 13. 아무도 진심으로 정의를 원하지 않는다.

 

으~음~~ 우리가 선진국으로 믿고 있는 미국도 이렇군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풍자도 눈에 띕니다.

 

진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재판하는 판사이다. 그런데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진상에서 가장 먼) 판사이고, 그 결론을 적용받는 사람은 (진상을 확실히 알고 있는) 피고인이다.

 

제가 변호사를 해보니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제가 판사를 할 때에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변호사를 해보니 아무래도 법대(法臺)를 사이에 두고 사건을 보는 것과 실제 피고인의 숨결을 앞에서 생생하게 느끼면서 사건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좀 있더군요.

 

선배님은 또 하나 재미있는 표현을 쓰셨네요. ‘지적 자위행위’. 우리 사회 최고의 인재들인 법관들 가운데서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는 신경을 덜 쓰고, 기술적, 지엽적 법리논쟁에 몰두하는 경우를 보고, ‘지적 자위행위’라고 표현하셨네요. 후후! 자위라... 이런 것도 자위행위라 할 수 있겠군요.

 

하여튼 책에는 여러 언급할 만한 부분이 많은데, 그러면 글이 자꾸 길어지니까 책 끝에 선배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법조삼륜의 바람직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법부와 관련해서는 “정의감 있는 법관”, “균형감 있는 법관”이고, 검찰에 관련 해서는 “자제하는 검사”, “묵묵히 일하는 검사”며, 변호사와 관련해서는 “창의적인 변호사”, “봉사하는 변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