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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우리’와 ‘저희’

[우리말은 서럽다 47]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라는 낱말은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대이름씨다. ‘여러 사람’에는 듣는 사람이 싸잡힐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대이름씨는 다른 겨레들이 두루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이름씨 낱말은 다른 대이름씨와 마찬가지로 매김씨로도 쓰인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나라,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기, 우리 어머니……’ 이런 매김씨 또한 남다를 것이 별로 없는 쓰임새다.

 

그러나 외동도 서슴없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 하고, 마침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에 이르면 이런 매김씨야말로 참으로 남다르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건 잘못 쓴 것이고 틀린 말이라는 사람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기 쓰인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을 싸잡아 쓰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나와 대상을 싸잡아 쓰는 것이다.

 

나와 대상을 싸잡으면 둘이니까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드러내는 뜻은 ‘둘’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뿌리 깊게 얽혀 살아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삶에서 빚어진 남다른 쓰임새다.

 

외동이 ‘우리 어머니’라 하는 것은 ‘나와 어머니’가 둘이면서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아내가 ‘우리 남편’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와 남편’이 둘이면서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 아버지’ 하지 않고 ‘내 아버지’ 한다든지, ‘우리 마누라’ 하지 않고 ‘내 마누라’ 하면 그것은 정말이지 우리네 자랑스러운 말씨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 또는 ‘우리 마누라’ 하면 나와 아버지 또는 나와 마누라가 둘이면서 떨어질 수 없이 서로 깊이 사랑하여 하나를 이루어 살아가는 ‘아버지’ 또는 ‘마누라’가 되지만, ‘내 아버지’ 또는 ‘내 마누라’ 하면 그것은 곧장 아버지 또는 마누라를 내가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며 내 손 안에 쥐고 살아가는 소유물로 만들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날이나 이제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남편을 나에게 딸린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나와 떨어질 수 없이 사랑으로 깊이 묶인 두 사람으로 여기며 사는 겨레다.

 

‘우리’를 남에게 낮추어 쓰는 말이 ‘저희’다. 그러나 ‘우리’를 낮추어 ‘저희’로 쓰려면 마음을 적잖이 써야 한다. 나를 낮추면 저절로 나와 함께 싸잡힌 ‘우리’ 모두가 낮추어지기 때문이다. 일테면 ‘저희 회사’라고 하려면 우선 말하는 ‘나’가 회사에서 가장 손윗사람이라야 한다. 게다가 듣는 사람도 말하는 ‘나’보다 더 손윗사람인 자리에서만 쓸 수 있다. 그러니 ‘저희 회사’ 같은 말을 쓸 사람은 사장이나 회장 같은 한둘에 지나지 않고, 쓸 자리 또한 그들보다 더 손윗사람 앞에서라야 하니 아주 좁다.

 

 

요즘 배웠다는 이들이 더러 ‘우리나라’를 ‘저희나라’라고도 하는데 이건 참으로 어림없는 소리다. ‘우리나라’에 싸잡히는 사람을 모두 낮추어 말해도 괜찮을 손윗사람은 우리나라 안에 아무도 없다. 옛날 같으면 임금이 어버이가 돌아가신 다음에 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민주 세상에서는 대통령이라도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보다 손윗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대통령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좋을 손윗사람 또한 세상천지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