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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젠 도시가 고향입니다

달빛을 받아 마음을 가라앉히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한가위 전전날 오후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한가위 준비를 하던 주부(主婦)나 새로운 직종인 주부(廚夫,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조금이라도 식혀주었으니 말이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는 빨리 온 올해 한가위는 30도가 넘는 불볕 무더위로 하늘만 처다보다가 아침 기온이 내려가서 그나마 한가위 느낌이라도 가지게 되었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도종환 '가을 사랑'

 

 

닷새라는 연휴가 이어지면서 고향을 찾는 차량도 다소 분산돼 예전처럼 아주 심한 고생을 하지 않았고 한가위 전날 귀성전쟁보다도 귀경전쟁으로 고속도로가 크게 막힌 것을 보면 연휴 분산효과는 확실했다. 아마도 그 전날 미리 고향을 갔다가 대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이반 한가위는 고향집에서 보낸 분들이나 도시로 돌아온 분들이나 한가위를 즐기는 방법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어디서건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 정을 나눈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사람들이 모두

가족이 되어

사랑의 인사를 나누는 추석날

이승과 저승의 가족들이

함께 그리운

감사와 용서를

새롭게 배우는 날​

 

하늘과 땅

고향의 산과 강

꽃과 새가

웃으며 달려오네

                 ... 이해인 '한가위'​

 

요즘은 농촌 인구가 줄고 고향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점점 돌아가신 터라 내려갈 고향이 따로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손주들이 도시에 모이는 일도 많아졌으니, 도시의 집들이 손주들의 고향이 된 셈이다. 우리가 어릴 때 보고 기억하던 고향의 풍경들은 다 그림책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얀 달덩이같이 지붕에 있던 둥근 박들, 대청마루에 널린 빨간 고추들, 나무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발갛게 빛나는 홍시들, 산모퉁이 길에 툭툭 떨어지던 알밤들,,, 그런 것들을 보러 갈 곳이 없다.


 

 

그나마 필자가 사는 곳은 북한산 자락이어서 집 주위 산자락에 밤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고 있어 거기서 알밤을 주울 수 있다. 지난헤 한가위는 알밤들이 거의 다 떨어진 때여서 손주들이 알밤 줍기를 하기가 어려워, 우리 부부가 미리 주은 밤송이를 냉장보관 하다가 일부러 길에 다시 놓고 손주들이 보도록 하는 쇼를 연출했었는데 올해는 이제 알밤이 막 떨어지는 때이니까 한 살 더 먹은 손주들을 데리고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었다. 가을바람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가을이구나. 드디어 아들 며느리도 손주들과 함께 모이는구나. 그동안 부쩍 큰 손주들, 다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보다도 더 커진 손주들, 그들을 보며 시간을 다시 생각하고 자연의 질서를 다시 느끼게 되는구나. 그들이 잘 자라는 것이 우리의 미래이니 키를 재어보고 칭찬을 해 주자. 그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이젠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줄 필요도 있구나." ​

 

한가위가 다가오며 이런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 손주들이 와서 같이 자고 가는 것은 그들에게 사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아주 귀한 기회다.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그들이 우리 집을 고향으로 알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그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가위날 아침상은 그들에게는 오래 기억될 것인데 올해는 많이 해 먹이는 것보다도 사촌들이 어른들과 같이 무언가 만들어 먹는 것을 배우게 하자.

 

이런 생각에 우리들은 쌀가루를 만들고 콩과 팥, 깨 등으로 소를 준비해 송편을 함께 만들었다. 쌀가루를 뭉치고 한 자리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니,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진다. 우리 집은 두 아들들을 통해 다행히 손주가 5명이나 되니 사촌들끼리 모처럼 만나 함께 노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낮에는 집 주위 산책길에 올라 다람쥐가 청솔모가 혹 나오는가 보고 물가의 오리도 찾고 하는 체험을 하였으니, 그들에게 한가위는 이렇게 같이 모이고 자연과 가까워지는 기회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올해는 길에서 주은 도토리나 알밤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길옆의 동물들이 먹으라고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오도록 한 것이 달라진 그림이다. 이제 다들 초등학교 이상 다니는 손주들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체험을 자연스레 하도록 해준 것이 좋았다는 생각이다.

 

알밤들은 여름내 뙤약볕에 서서 하늘 우러러 두 팔 들고 정성을 모은 밤나무들의 경건한, 간절한 염원 혹은 기도로 얻은 자연의 보상이자 선물이 아니던가? 들판의 곡식도 뜨거운 햇살 아래 덥다고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시간을 참아내고 인내를 한 결과이니 그것 또한 성실함에 대한 자연의 보상일 터이다. 가을은 이처럼 모든 이들에게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그에 상당하는 대자연의 선물이 보상으로 따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선물은, 둘레길의 도토리와 알밤들을 다람쥐나 청솔모, 혹은 새들이나 멧돼지들이 나누어 받아 가서 다가오는 겨울을 이기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이 골고루 잘 나눠 쓰라고 말해준다. 그러한 원리를 가르쳐준 것이니 올해 우리들의 한가위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가을에는 배우게 하소서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마악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모쪼록 이 한마디 배우게 하소서

괜찮아 다 괜찮아​

 

조금은 부족해도 조금은 허점투성이여도

있는 그대로,​

 

가을에는 완벽을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생각도 마음도 익게 하소서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 홍수희, <가을의 기도>

 

 

아쉬운 것은 우리가 알던 고향의 기억과 추억이 점점 기억 뒤편으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풍경을 눈으로 볼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도시에 사는 이 시대, 우리의 고향, 자연이 주는 가르침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집 앞 감나무가

지나가는 가을 앞에 섰습니다

잎 다 떨군 까만 가지 끝

올망졸망,

노란 열매들이 달려 있네요​

 

땡감, 반시, 홍시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버릴 것도 없다고

윙윙, 세상 풍파에 맞서고 있네요​

 

내게도 아이들 셋

손자 손녀가 여섯, 그리고 며느리 사위

다 가지 끝 감처럼 내 손끝의 기도입니다

                                            ... 성백군 <가을의 기도>

 

 

올해 한가위의 보름달은 수퍼문이었다고 한다. 지구와 가장 가까워져서 크게 보였다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저 달이 구름 사이로 숨은 곳도 있지만 둥글고 흔한 얼굴을 우리에게 보야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아 서로 싸우기를 즐겨하던 우리들의 달빛을 받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와 가족, 주위와 나라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또 한 해를 살아가는 마음의 힘이 될 것이다.

 

 

 

이제는 농촌이 아니라 도시가 고향인 애들이 점점 대세로 가고 있다. 연휴라고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나라 밖으로 나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기에, 이제 한가위는 그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날이 되어야 할 듯하다. 연휴 기간, 그들은 조상에 대한 차례를 힘들게 차리고 준비하는 대신에 간단히 지내고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는구나. 가을이 열리는 고궁이나 공원, 놀이터가 이제 그들의 고향이다. 그러한 차량들로 교외의 길이 막히는 것이 한가위의 신풍속도다.

 

이들이 어디서건 가족을 확인하는 진정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와 함께 진정한 한가위 귀성ㆍ귀경이 아니라 휴식이 중요해진 귀경차량이 막히는 경험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곧 처가로 떠나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하는 우리 손주들을 보면서 예년보다 조금 이른 올해 한가위에는 진정한 한가위는 무엇인지를 더 고민하는 때가 되었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