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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보내는 것은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4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아들 녀석은 수도권 S대에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는데, 별로 만족해 하지 않는 눈치다. 아내는 “차라리 미국의 대학으로 아들을 유학 보내면 어떨까?”라고 김 교수에게 의견을 묻는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유치원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영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영어 단어 실력이야 김 교수가 낫겠지만 회화는 본토 발음으로 유창하니, 남들처럼 어학연수고 뭐고 필요 없이 직접 미국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한마디로 절대 반대였다. 김 교수는 아내에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를 분명히 했다.

 

첫째는, 고등학교만 마치고 미국에 가면 아들은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잊어버리고 미국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배울 것이다. 미국적인 가치관을 가지고서 앞으로 한국에서 살면 오히려 평생 갈등이 생길 것이므로 아들은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 결국 아들은 우리 곁을 영영 떠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둘째는, 대학동창이라는 중요한 자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남자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동창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어떻게 보면 무형의 재산이다. 최소한 대학은 한국에서 나와야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 평생 대학 동창이 없는 외로운 사회생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학교수 봉급 받아서 미국대학 학비를 대줄 수가 없다. 한 달에 2,000달러를 보내려면 봉급의 3분의 2가 나가는데, 그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당신이 혹시 나 몰래 모아둔 돈이 있으면 몰라도 우리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는 미국 유학 열풍이 불었다. 강남의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유학 붐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중학교 때부터 아이를 미국에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부유층 사람들은 “애가 공부 못하면 유학 보내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교육이 암기 중심으로 아이 죽이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미국에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미국에 1년 정도 어학연수를 갔다 오면 입사 시험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학생에게 보내는 학자금으로 환전되어 매달 외국으로 나가는 달러가 엄청났고 무역외 수지 적자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하면 호주나 영국으로 아들과 딸을 내보내는 사람이 서울의 부유층 사이에는 수두룩했다. 심지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까지 아이들을 보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 공부한다고 5년 동안 고학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졸업한 뒤에 한국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미국인 회사에 1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김 교수는 미국 사회에 대하여 피상적이 아닌, 심층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다. 미국 회사에서 직장 동료 사이에 얼마나 경쟁이 심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또 직장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인종 차별이 더 심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장사하여 돈을 많이 번 고등학교 동창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자기 아들을 미국의 중학교에 유학 보내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왔다. 그때 김 교수는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위협한 적이 있다.

 

“자네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미국 박사 학위를 받는 모습을 그려보겠지. 그리고서 한국에 금의환향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연상하겠지. 그러나 이 사람아, 한 마디로 꿈 깨게.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대학원 3년을 마친 자네 아들이 미국에서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면 한국말은 잊어버릴 것이다. 아들은 한국말이 서툴고 영어가 더 유창하고 편할 것이다. 자네 부부는 아들과 영어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겠는가?

 

미국에서는 어른도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알고 있지? 자네에게 아들이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서 영어로 ‘유진, 유진’ 한다면 (그 친구의 이름은 박 유진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네 아들은 동창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한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늙었을 때 자네 아들이 ‘늙으신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지’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겠는가? 자네 아들은 미국에서 영주할 가능성이 아주 클 것이네. 자네가 죽은 뒤에 제사를 지내줄 것인가? 자네가 무덤에 묻힌 뒤에 자네 아들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자네의 무덤에 찾아오겠는가?

 

 

미국에 보내면 최소한 영어는 확실히 배울 것으로 생각하겠지. 그러나 설혹 영어가 유창해진들 한국말을 잃어버리면 그게 한국 사람인가 미국 사람이지. 설혹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떠듬떠듬할 수 있을지라도 사고방식이 이미 미국화되었는데, 그게 미국 놈이지 한국 사람인가? 그래도 아들의 장래를 위해 내가 지적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미국에 보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릴 수 없지.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하게. ‘이제 나는 아들을 잃어버린다. 나는 이제 아들을 미국에 양자 보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나.”

 

세월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흘러갔다. 어느새 봄이 물러가면서 이제는 한낮이면 더워진다. 여름이 서서히 다가온다. 이 무렵 국가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치기 시작하였다. 경기가 나빠지고, 수출이 잘 안되고, 내수가 침체하고, 외환 사정이 악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경제를 맡은 재경부 장관은 “아직 우리나라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라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장관은 미국 박사 출신인가 보다. ‘기초’라고 한다든가 ‘토대’라고 하면 미스 최도 알아들을 텐데,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니 뭔가 대단한 것이 튼튼한 모양이다. 그런데, 박 교수에게 들으니, 서울에 있는 고급 술집의 40%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연구 과제와 논문, 강의 준비와 학생 면담 등으로 바쁜 일학기를 보내었다. 학기가 끝나갈 때까지 그동안 아가씨는 연락이 없었다. 김 교수도 보스에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인연으로 만났지만, 인연이 다했다면 그걸 어찌하겠나?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흘러가는 구름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일 아닌가?

 

스페인 말로서 ‘남자아이’라는 엘니뇨 현상 때문인지, 또는 환경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계절이 아무리 변덕스럽거나 견디기 힘들더라도,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그저 기다리면 지나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참고 두어 주 기다리면 어김없이 더위는 물러간다.

 

사실 우리나라 여름은 기온이 삼십 도가 넘고 정말 에어콘이 필요한 기간은 3주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땀 좀 흘리면서 꾹 참고 기다리면 에어콘 없이도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돈이 많아서인지 정보가 빨라서인지, 겨울에 벌써 에어콘을 사고 여름이 되어 조금만 더워도 에어콘을 틀어서 전기를 부족하게 만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