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3월이 봄의 수줍은 미소라면 4월은 봄이 얼굴을 펴고 웃는 계절이라고 하겠는데 올해는 날씨건 세상이건 봄이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안 왔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다음 주는 4월이지요. 4월 초, 정확하게는 4월 2일이 되면 제가 속한 모임에서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의 한 묘소에 오릅니다. 제가 속한 모임은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현창회’입니다. 이름에서 보듯 아사카와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형제를 기리는 모임입니다.
망우리에는 아사카와 형제 가운데 동생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의 무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1891년에 태어나 23살 때인 1914년에 우리나라로 와서 산림과 수목 관련 일을 하다가 1931년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돌아가시고도 이 땅에 묻혀있습니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써 94돌이 되는군요. 우리들 현창회 회원들은 해마다 4월 2일에 이분의 묘소에 간단한 술과 안주와 함께 그의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무덤 앞쪽에는 작은 비석에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입니다.

다쿠미 씨가 우리나라에 와서 헐벗은 우리 산하를 빠르게 복구할 수종을 찾아 보급한 일, 우리 일상생활에 숨어있던 도자기와 소반 등 민에품의 아름다움을 정리하고 발표한 일, 이런 민예품들을 모아서 박물관을 열도록 한 일은 그의 주요한 공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 압박받고 천대받던 우리 한국인들의 친구가 되어 홀대받거나 무시되던 우리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우리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것이지요. 1931년 다쿠미 씨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서 장례식이 청량리에서 열렸을 때 많은 분이 친구를 잃은 아픔을 눈물로 드러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묘사한 그대로입니다.
“누워있는 그의 시신을 보고 통곡하는 조선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 반목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관은 조선 사람들이 자원하여 메고 청량리에서 이문리의 언덕까지 운구했다. 자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날은 비가 몹시 내렸다. 도중에 마을 사람들이 운구 행렬을 멈추고 노제를 지내고 싶다고 졸라대었다. 그는 그가 사랑한 조선 옷을 입은 채 조선인 공동묘지에 묻혔다”

우리에게 다쿠미는 친구였습니다. 그의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망우리공원에 올라 우리의 친구인 다쿠미 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다쿠미 씨의 나라 사람들이 함께 우리에게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일본인에게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친구가 되면 지구상 가장 가까운 두 나라인 우리와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그러니 서로 나라나 민족이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서 서로를 아껴주는 이웃, 친구가 되자는 마음과 소망입니다.
지난해에도 우리는 추모했지요. 지난해 일본 광보문화원 원장님이 추모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사카와 타쿠미씨의 생애를 더듬어보면, 한국사람들과 그들의 민족문화에 경의를 가지고 접하는 것이 당시의 국가 관계 속에서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고, 또 어려운 일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사카와 타쿠미 씨 한 사람의 행동이 비록 당장은 국가의 큰 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현재 한국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과 경의에 한국의 푸른 산들에, 그리고 사후 10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이곳에 모여 계신 한국분들의 마음 속에 확실히 계속 살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최근 이런 소식을 보셨나요?
지난해 한국인의 결혼 건수가 2020년 이후 4년 만에 200,000건을 돌파한 가운데 한일 청년들의 교류가 늘어나며 한국 남편-일본 아내 간 국제결혼이 전년보다 무려 40%나 증가했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 전 2023년 840건에서 1,176건으로 2년 연속으로 40%나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본인 여성과 외국인 남성의 혼인 사례 가운데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국적이 한국이라는 통계가 있지요. 일본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모두 6,682쌍이 혼인했는데 1,561쌍이 한국인 남성과의 혼인으로 중국인과 미국인 남성을 제쳤지요. 그만큼 이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친구를 넘어 가족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일본인들이 우리들을 위해 마음을 써준 분들이 있었다면 우리들에게도 일본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던져 사람을 구한 이수현 씨가 있고 오키나와에서 주민들을 치료해 주다가 목숨을 잃은 정보옥 씨가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돕고 살아온 역사를 같이 기억하고 이것으로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아픔 감정을 묻고 서로 친구로서 마음을 열 수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올해가 한국과 일본이 1965년 수교를 한 지 60돌이 되는 해입니다. 몇십 돌, 몇백 돌이란 말은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다짐을 하는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우리 회원들은 망우리에 올라 다쿠미 씨의 마음을 다시 받아 그것으로 우리와 일본 사람들 사이에 친구의 길을 여는 계기를 삼고 싶습니다. 이러한 친구의 길에 동참해 주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 발걸음이 4월 2일 11시에 망우리 공원에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 묘소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