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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역세권, 지하철역 주변의 역사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 박은주, 미디어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歷)세권.

역사적 장소가 가까이 있는 지하철역 주변을 재치 있게 이르는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재기발랄함이 뿜어져 나오는 이 책,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은 종각역, 쌍문역, 안국역, 독립문역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이용하는 지하철역 인근에 있는 역사적 장소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지은이 박은주는 <역사스테이 흔적>, <만권의 북살롱>, <공감사람> 등을 연출한 PD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지하철역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책에 나온 몇 군데 역들을 소개해 본다.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

쌍문역으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옛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간송’이라 하면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떠올리지만, 미술관과는 별도로 간송의 옛집과 묘역이 있는 장소가 ‘간송옛집’이다. 간송옛집은 19세기 말 전형필의 양부 전명기가 곡식 등 소출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그가 죽은 뒤에는 한옥 부근에 묘소를 꾸미고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집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도봉구가 함께 퇴락한 본채와 부속 건물 등을 수리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집 뒤편 언덕에는 간송 전형필과 그의 부인 김점순이 합장된 무덤, 그리고 양부 전명기의 무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어진 지 100여 년이 넘은 전통 한옥으로 건축학적 값어치도 크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시선이 닿는 현판 ‘옥정연재(玉井硏齋)’의 뜻도 훌륭하다. 간송의 외숙부 박대혁이 지어준 이름으로, ‘우물에서 퍼 올린 구슬 같은 맑은 물로 먹을 갈아서 글씨를 쓰는 집’이라는 뜻이다.

 

(P.33)

일제 강점기, 간송 전형필은 경성에서 이름난 부자였다. 그는 부를 개인의 영달에 쓰지 않았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척박한 삶 속에서 일본인 권력자와 결탁하거나, 일부 골동품 상인들처럼 자신의 부와 안목을 자랑하는 식의 오만을 삼갔다. 그에게는 ‘민족의 혼을 지킨다’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그가 단순히 개인적 취향으로 수집하지 않았다는 것은, 광복 이후에는 거의 수집 활동이 없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남긴 말에는 홀가분함과 사명감이 동시에 묻어난다. “독립이 됐으니, 저는 좀 게을러도 됩니다. 이제는 누가 사도 우리 것 아닙니까?”

 

# 종로3가역 5번 출구, 춘원당한의약박물관

종로3가역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면 1847년부터 이어온 춘원당한방병원이 있다. 1847년 평안도 박천에서 시작해 1938년 평양, 1952년 부산을 거쳐 지금의 종로에 이르기까지, 8대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의약 명문가’다.

 

7대 윤영석 원장부터는 춘원당 한의학박물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의사가 되기 전부터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많은 자료와 유물을 모으겠다고 다짐했고, 한의학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박물관을 열었다. 2008년 개관한 한의약박물관은 이색적인 건축과 다양한 전시로 한의학을 널리 알리는 산실이 되었다. 한의학박물관이 있는 신관을 설계한 황두진 건축가는 특히 탕전실을 신관 3층에 설치해 길에서 오가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요즘 널리 퍼진 ‘개방형 주방’과도 비슷한 것이어서, 현대 한방의 과학성과 신뢰성을 강조하고 투명한 제조 과정을 공개하는 의미가 있다. 지금은 한방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과 박물관 관람객들이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다.

 

(p.223)

탕전실을 공개한다는 것은 가정에서 침실을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음식점으로 치면 주방을 훤히 공개하는 것인데, 사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죠. 탕전실을 보여주려면 우리가 얼마나 잘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위생과 품질에 더욱더 신경 쓰게 됐습니다. -윤영석(춘원당한의원원장)

 

춘원당한의약박물관은 특히 한의학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꼭 방문해 볼만하다. 8대째 가업을 이으며 오랫동안 한의학에 천착하고, 가문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지역사회에 선보이며 문화적으로도 공헌하고 있는 진귀한 사례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별생각 없이 이용하던 지하철역 주변이 생각보다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볼거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앞으로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 왠지 모르게 주변을 더 둘러보게 될 것 같다.

 

역세권은 단순히 역에서 가까운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반경에서 역사적 명소와 가까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6년 새해에는 내가 사는 곳도 혹시 역세권이 아닌지,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여러모로 참신한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