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검무(劍舞)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칼이라는 무구를 들고 춘다는 점에서, 이 춤은 인간의 생존과 권력, 그리고 의례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검무의 기원을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실제 전승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검무는 단일한 출발점에서 비롯된 춤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와 문화가 겹겹이 쌓이며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
최근의 논의는 이러한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 학술 발표에서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검무의 기원을 ‘항장무’와 연결지어 설명하였다(우리문화신문, 2026. 3.20). 항장무는 중국 《사기》 「항우본기」의 홍문지연 서사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평안도 지역에서 잡극 형태로 유행하다가 궁중 정재로까지 수용된 춤으로 알려져 있다(손선숙, 2023). 한편 국가무형유산 제15호 북청사자놀음 동선본 전승교육사는 북청사자놀이 전승 과정에서 항장무 계열로 해석될 수 있는 음악이 전승자 없이 음악적 형태로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전경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청사자놀이에는 칼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초장ㆍ중장ㆍ종장으로 나뉘어 점차 속도가 빨라지는 연행 구조를 보인다(전경욱, 2019). 이러한 세 장 구조는 함경남도 검무에서 나타나는 장단 변화 양상과도 유사하게 확인된다. 반면 다른 지역의 검무에서는 이러한 세 장 구조 이전에 별도의 장단이 선행되며, 그 과정에서 맨손춤이나 한삼춤이 함께 연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동일한 검무 계열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장단 구성과 연행 방식에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함경남도 북청 지역에서는 칼춤을 초장ㆍ중장ㆍ종장의 세 장으로 나누어 점차 속도를 높이며 연행하는 방식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기능보유자의 고령화로 인해 이러한 연행 형태를 온전히 재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과거 칼춤을 능숙하게 연행하던 예인으로는 김영곤(1918년생)과 전광석(1917년생)이 있었으나, 김영곤은 이미 세상을 뜬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사례는 함경남도 지역에서 칼춤이 연희적 맥락 속에서 활용되어 왔음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양식이 함경남도 검무의 구체적 춤사위와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로 검토가 필요하다.
검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서사는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다. 조선시대 궁중 정재인 검기무 역시 이러한 서사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됐다(김태덕, 2023). 다만 이를 곧바로 궁중 검기무의 직접적인 기원으로 단정하기보다는, 검무 전반에 걸쳐 작동해 온 상징적 배경으로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접근일 것이다.
정재도에 나타난 검기무, 공막무, 첨수무를 보면 이러한 구조는 더욱 분명해진다. 검기무는 황창랑 설화를, 공막무는 항장무 계열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 공막무란 이름은 “공(公)이여 한왕(유방)을 해치지 마시오(莫)”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항장무와 동일한 홍문지연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공막무와 첨수무는 칼을 사용하는 무용이라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동작과 연행 순서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다만 첨수무라는 뾰족한 소매의 옷을 입고 추는 또 다른 계열의 춤이 존재한다. 영조 연간 이후 그 용도에 따라 내연에서는 <공막무>, 외연에서는 <첨수무>로 구분하여 불렸으며, 연행 또한 남녀로 나뉘어 이루어졌다(국립국악원).
이처럼 출발점은 다르지만, 실제 춤사위의 구성은 상당 부분 유사하게 나타난다(손선숙, 2023). 이는 검무가 하나의 계통에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서사가 궁중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형식으로 정리되었음을 보여준다.
검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춤을 추었는가 하는 점이다. 전경욱은 이보형의 견해를 인용하여 검무를 무동(舞童)의 춤으로 보기도 하였는데, 이는 검무가 궁중의 의례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유랑예인과 연희 집단의 활동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전경욱, 2019). 결국 검무는 궁중과 민간이 분리된 채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형성 과정은 검무의 칼(무구) 형태에서도 확인된다. 전통 검무에서 칼은 회전하지 않는 고정형 구조를 유지한다. 신윤복의 <쌍검대무>에 나타난 검무 장면을 살펴보면, 춤을 추는 인물들이 사용하는 칼 역시 고정형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공막무, 첨수무, 궁중검무, 진주검무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이태호, 2016). 반면 근대 이후 무대화 과정에서 형태적 변형이 나타나며, 이는 검무의 표현 방식이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보여준다(김태덕, 2023).
근대 무용가인 최승희의 검무에서도 회전형 칼이 사용된 사례가 확인된다(이진원, 2021).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2022)는 최승희의 검무 인식과 재구성 방식에 주목한다. 최승희는 자신의 《검무》 해설에서 이를 신라 태종 무열왕 7년(660)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좌장군 품일의 아들 화랑 관창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춤으로 설명하였다. 특히 ‘관창’을 ‘황창’으로 말한 점에 대해, 김연수는 《황창무》가 관창을 기리는 춤이라는 전통적 인식을 최승희가 수용한 결과로 해석한다.
또한 《문학신문》(1966.3.22.)에 따르면, 최승희는 화랑의 검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칼과 손잡이가 분리되는 형태의 개량된 무구를 사용하였다. 이는 기생 계열의 검무를 연구한 결과로 이해되며, 전통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무대적 효과를 고려한 형식적 변형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특정 인물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 검무로 확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검무의 전승은 대체로 권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권번 계열의 검기무는 동작이 절제되어 있고 선의 변화가 크지 않으며 형식미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남부 지역 검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편, 북부 지역의 평양검무와 해주검무 역시 같은 권번 계열에 속하는 만큼 기본적인 형식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함경남도 검무는 같은 권번 계열 안에서도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동작의 규모가 더 크고, 전체적인 기세가 강하며, 칼의 사용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점은 항장무 계열에서 보이는 역동성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읽힌다. 같은 전승 체계 안에서도 지역과 연행 환경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모든 검무가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전승이 이루어지는 환경과 지역에 따라 신체 사용 방식과 동작의 크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방 지역의 연희 전통에서는 더욱 강한 신체성과 역동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일부 검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장홍심이라는 인물은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송미숙(2020)에 따르면 장홍심은 1914년 함경도 함흥 출생으로, 12살에 함흥권번에 들어가 정남희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우고, 배국자로부터 항장무, 검무, 살풀이춤, 승무, 입춤, 포구락 등을 익혔다. 이는 장홍심이 권번 체계 안에서 다양한 춤을 습득한 전문 예인이었음을 보여준다(송미숙, 2020; 이병옥 인터뷰, 2020).
또한 이자균(2006)의 견해에 따르면, 장홍심은 이강선과 함께 대무(對舞, 마주 서서 춤을 춤) 형태의 검무를 공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쓰고 춤을 추다가 이를 벗어 던진 뒤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검무로 전환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이러한 양상은 단순한 권번식 형식미를 넘어 더욱 극적이고 기세 있는 검무 양식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이자균, 2006).
함흥권번 출신인 그는 권번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항장무를 연행한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후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근대 무용 환경 속에서 활동하며 한순옥을 지도하였다. 하나의 인물이 서로 다른 전통을 경험하고 이를 매개하는 과정은 전승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선택과 재구성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검무의 전승 양상을 따라가다 보면, 특정 지역에서 전승되는 춤이 단일 계통의 보존이라기보다 여러 요소가 중첩된 형태로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항장무와의 서사적 연관성이 논의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연 형태는 전하지 않지만 북방 연희 전통에 남아 있는 검무곡을 통해 그 음악적 흔적이 포착된다. 이러한 점은 검무가 서사와 음악, 지역, 신체, 전승 환경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복합적 장르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故) 장홍심–고(故) 한순옥–양승미로 이어지는 전승을 통해 확인되는 함경남도 검무는 하나의 사례로 읽힌다. 권번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북방 지역 특유의 신체성과 역동성이 더해지고, 항장무와 같은 서사적 흔적 또한 함께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 전승은 단순한 계보가 아니라 실제 교육과 연행을 통해 함경남도 검무 고유의 춤사위가 지속적으로 전승됐다는 점에서 분명한 실체를 갖는다.
따라서 함경남도 검무의 근원은 하나의 기원으로 환원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서사와 전승 체계, 그리고 지역적 특성이 결합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동작의 규모와 기세, 그리고 호방한 신체성은 권번 계열 검기무와 구별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검무는 특정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밝히는 문제보다, 전승 과정에서 어떠한 양식과 특징이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전승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과 시대, 그리고 만난 사람들 속에서 춤을 배우고 다시 만들어 간다. 검무는 그렇게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습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체화되며 이어진다. 그렇기에 검무의 값어치는 단일한 기원이 아니라, 전승과 재구성의 과정에서 형성된 고유한 춤의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