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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생명을 깨우는 고요한 합창, 아지랑이

아지랑이, 삶에도 기분 좋은 일렁임이 시작되기를
[정운복의 아침시평 30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겨울의 묵직한 외투를 벗어 던진 대지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때,

지표면 어디쯤에선가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대지가 겨우내 품어온 뜨거운 생동감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봄의 지문(指紋)이자, 잠든 생명을 깨우는 고요한 합창입니다.

 

아지랑이는 형체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세상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흔들어 놓습니다.

메마른 논둑길 위로, 혹은 보리밭 사잇길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딱딱했던 세상의 경계는 이내 부드러워집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지만,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그 움직임은

마치 대지가 추는 느릿한 춤사위와 같습니다.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원경(遠景)은 마치 덜 마른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고,

그 일렁임 속에서 세상은 잠시 현실의 무게를 잊은 채 몽환적인 꿈을 꿉니다.

 

아지랑이는 단순히 공기의 밀도 차이가 만들어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가운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 애쓰는 씨앗들의 거친 호흡이며,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며 숨 쉬는 안도감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는 것은,

땅속 깊은 곳에서 이미 봄의 맥박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햇살이 지면을 애무할 때마다 땅은 그 온기를 머금었다가 다시 하늘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 순환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아지랑이는 대지가 하늘에 보내는 가장 다정한 답장이기도 합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만히 멈추어 서서 시선을 낮출 때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아지랑이는 우리에게 서두르지 말고 잠시 멈추어 보라고 권합니다.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그 아련한 불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겨우내 웅크렸던 우리의 마음도 함께 일렁이며 따뜻한 봄기운으로 채워집니다.

 

아지랑이 피는 들판 끝을 바라보며 삶에도 기분 좋은 일렁임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무거운 고민은 저 아지랑이 너머로 가볍게 날려 보내고,

오직 봄이 주는 생명의 찬란함을 온몸으로 맞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