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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무령왕릉보다 앞서 제작된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벽돌 연대측정을 통해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이 4세기 말 이전에 제작된 사실 확인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원장 임종덕)은 벽돌의 광여기루미네선스(OSL) 연대측정을 통해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교촌리 3호 전실묘)이 무령왕릉보다 앞서 제작되었음을 밝혔다.

* 광여기루미네선스(OSL, 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 연대측정: 광물질 석영 또는 장석이 빛에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는 신호(루미네선스)를 이용하여 무기물(퇴적토, 가마터, 토기, 기와, 벽돌 등)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충남 공주시 교동 252-1번지 소재)은 벽돌로 내부구조를 방처럼 만든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고분 형태로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6호분이 이에 속한다. 교촌리 벽돌무덤은 1530년(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공주목조(公州牧條)에서 “향교의 서쪽에 무덤이 있는데, 백제왕릉이라고 전한다”라는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는 가루베 지온(輕部慈恩)과 사이토 다다시(齊藤忠)에 의해 조사된 바 있고, 그 뒤 2018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재발굴조사를 하여 고분 구조와 축조기법이 확인되었다.

 

공주 교촌리 벽돌고분은 무늬가 없고, 비교적 저온으로 구워진 벽돌로 만들었으며, 벽돌과 벽돌 사이를 채워 넣는 줄눈으로는 점토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이나 글씨 등이 확인된 바 없고, 무령왕릉, 6호분과는 다른 형태와 재료적 특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무령왕릉과 6호분은 출토된 명문을 통하여 중국 남조의 기술적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6호분에서 출토된 벽돌 옆면의 글씨는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또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 등으로 판독된다. 명문에서 표기된 ‘양(梁)’은 중국 양나라(502~557년)로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재조사한 29호분 폐쇄용 벽돌에서도 글씨가 확인되었는데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로 판독된다. 그 내용은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남경 사람)이다’로 해석되어 당시 중국 남경이 남조의 도읍임을 고려할 때 남조 기술자들이 벽돌과 무덤 제작에 참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무령왕릉은 무덤 폐쇄용 벽돌에 새겨진 ‘~사임진년작'(~士壬辰年作)’ 글씨를 통해, 무령왕의 재위기간(501~523년)에 해당하는 임진년(512년) 무렵에 빚어진 것으로 추정됐던 만큼,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이 무령왕릉 이전에 제작된 것인지, 무령왕릉 이후에 백제기술로 제작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에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교촌리 벽돌무덤의 벽돌을 대상으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4세기 말 이전에 만든 벽돌로 나타났다. 곧 교촌리 벽돌무덤이 무령왕릉보다 백 년 이상 앞서 제작된 무덤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벽돌로 내부구조를 방처럼 만든 고분의 형태가 당시 이 지역에서 처음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연대측정의 과학적 분석방법과 결과 해석은 4월 21~24일에 강릉에서 열리는 ‘2026년 춘계 지질과학기술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