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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이 글은 서울 망우리 공원 묘원에 있는 아사카와 묘 앞에 세워진 빗돌(묘비) 내용입니다. 이 무덤 주인은 한국의 찻그릇, 깨어진 도자기 조각 그리고 정감 어린 소반(상)을 통해 이 땅과 한국 사람을 몹시도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2~1931)입니다.
먼저 건너와 있던 형을 따라 조선에 온 그는 일본인임에도 조선어를 유창하게 말했으며, 한복을 즐겨 입었고, 김치를 좋아했습니다. 조선임업시험소 말단직원으로 17년 동안 일하면서 "조선 도자기의 귀신"이란 말을 듣던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를 통해 조선 민예에 빠져든 뒤 박봉을 쪼개 도자기와 소반을 틈틈이 수집했습니다. 한복을 입고 다니다 조선인으로 오해한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래도 한복을 벗지 않았습니다.
조선임업시험소 한국인 고용원들에게 친구처럼 대했던 그는 폐렴이 악화되어 40살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되자 “죽어도 조선에 있을 것이오. 그리고 조선식으로 장사를 지내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장례식날은 이웃의 한국인들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며 다툴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의 무덤은 한국인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일본인 민예가는 한국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일본인들이 앞다투어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해가도록 도운 사기꾼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는 조선의 문화유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선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조선에서 수집한 많은 문화재를 일본에 가지고 가지 않은 사람들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