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절기의 열네 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처서(處署)입니다. 아직 불볕더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한 것처럼 가을 하늘은 멀지 않았습니다. 낱말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합니다. 또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도 이 무렵에 하는데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줄어갑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위는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민요 가사의 한 대목입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소리로 듣는다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이때쯤부터 슬슬 섬돌 밑 귀뚜라미도 애끓는 울음소리를 낼 채비를 하는 시기가 처서입니다. 막바지 더위가 남아있지만 어느새 밤나무 아래서면 밤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