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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

[국악속풀이 1 ]

 [우리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얼마 전, 국회의원을 지낸 K씨, 그리고 모 은행장을 지낸 P씨와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K씨가 실토하는 말이 “나는 추임새가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서 교수의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이란 책을 보고 조금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하자 P씨가 “추임새라니요? 추임새가 무슨 말입니까? 새 이름입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이 한국의 고위직 인사들이나 지식인 사회의 서글픈 실상이려니 생각하며 추임새에 관해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추임새란 남을 추켜 주는 말이다. 남을 칭찬해 주어 더욱 힘을 내도록 격려해 주는 말이다.

판소리 부르는 모습을 보면 소리하는 사람 옆에 북통을 마주하고 앉아서 열심히 북을 치는고수(鼓手)가 있는데 그는 북만 열심히 치는 것이 아니라, 대목 대목에서, 또는 구절 끝에서 ‘얼씨구’ ‘으이’, ‘좋지’, ‘좋다’ ‘잘한다’ 등의 조흥사(助興詞)를 발함으로 해서 창자(唱者)의 흥이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추임새이다. 

목청을 돋우는 소리, 대사를 읊조리는 아니리, 춤을 곁들인 여러 가지 동작, 즉 발림을 섞어가며 3~4시간, 길게는 7~8 시간이상 판소리를 연출한다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소리하는 사람과는 달리, 옆에서 열심히 북을 쳐 대는 고수는 그 긴 시간 동안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리를 움직이지도 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북을 끼고 바닥에 앉아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고수의 육체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소리꾼은 매우 힘든 역할이고 고수는 상대적으로 쉬운 역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그렇지 않다.

고수의 역할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장시간 앉아서 북을 친다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확한 장단으로 소리꾼을 안내해 주어야 할 책임, 다시 말해 장단을 정확하게 쳐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확‘이라는 의미는 계산기나 컴퓨터와 같은 수치상의 정확이 아니라, 창자(唱者)의 넘치고 모자라는 부분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상의 정확이다. 더 뻗어야 할 소리를 박자를 맞춘다는 구실로 미리 끊어 버린다거나, 숨이 다 한 소리를 박자를 맞추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정확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정확성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강약의 조화이다. 북통머리를 사정없이 강하게 내려쳐야 할 대목인가? 아니면 부드럽게 북통을 울려서 소리와의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을 순간순간 결정해 나가야 한다. 소리 속을 훤히 꿰고 있지 못하면 불가능한 조건이라 하겠다. 정확성과 강약처리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명 고수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추임새를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고수는 절대 명고수(名鼓手)가 될 수 없다. 

70, 또는 80을 넘긴 노명창이 매일 인삼 녹용이나 고칼로리의 음식, 또는 헬스클럽에서 다진 체력 덕분에 장시간 무대에 서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고수의 추임새, 또는 청중 속에서 터져 나오는 추임새가 바로, 그 긴 시간을 버텨 나갈 수 있는 에너지의 보충원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나 직장, 우리 사회의 구성원 간에도 에너지의 보충원은 늘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내가 창을 하고 상대가 북을 잡고 있지만, 내일은 내가 북을 잡고 상대가 창을 할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만도 없고, 또 일방적으로 줄 수만도 없는 것이 곧 추임새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밝고 명랑한 사회로 바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추임새의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깎아 내리거나 비웃지 말고 격려하며 칭찬하자.
상대를 위하고 나를 위해서도 추임새를 아끼거나 그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추임새에 인색한 세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글쓴이 : 서 한 범
문학박사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