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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131. 한 여름에 보는 눈 속의 소나무

   

추사 김정희의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간결하게 그리고는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라는 발문을 붙였지요. 소나무는 이렇게 한겨울 눈이 쌓이 뒤에야 그 진가를 뽐냅니다. 그런데 여기 순수하게 소나무만 그린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가 있습니다. 이인상은 조선 후기의 서화가인데 이 작품은 바위 위로 솟아오른 눈 덮인 낙락장송의 당당한 모습을 그린 것이지요.

바위를 뚫고 곧게 뻗은 굵직한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진 아무런 꾸밈 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로 화폭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소나무 그 자체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더구나 이 소나무들은 예리하게 각이 진 바위들만 있고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비참하리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뿌리를 땅에 굳게 박고 있지요.

조선소나무는 이렇게 곧게 뻗은 금강송이 있는 가 하면 구부정 하지만 운치가 있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곧은 것도 굽은 것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인상은 원리원칙을 강조해서 꽉 막혀 보이지만 그래도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절개 있는 인품을 지닌 격조 높은 풍류인”이라고 평했습니다. 어쩌면 이 그림은 이인상 자신을 그렸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