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큰 난리 뒤에 백 가지 물건이 조폐(凋弊)하였으니 몸을 가리고 배를 채우는 것만도 다행이라 할 것인데 근년 이래로 풍속이 사치를 숭상하여 복식(服飾)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여염에 비단옷이 찬란하고 천한 창기들에게 주취(珠翠)가 현란합니다. 피차가 서로 숭상하여 절제할 줄을 모르니 이때가 어느 때이기에 사치의 심함이 감히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경계하지 않는데 어찌 하늘이 화(禍)를 뉘우치겠습니까. 사치하는 풍습도 천재(天災)를 부르는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이는 선조실록 (212권) 1607년 6월 3일 2번째 기사에 보이는 ‘사간원 상소문’입니다.
여기서 큰 난리란 임진·정유재란을 말합니다. 이 상소문에서는 나라의 변란이 끝난 지 10여 년이 되어가는 데도 전쟁 중에 입은 종묘사직의 폐해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대다수 백성은 굶주림을 모면하기도 바쁜데 일부 층에서 현란한 옷을 차려입고 구슬로 치장하는 사치가 심함을 우려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신하로서 임금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자신들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어집니다.
“신들은 모두 무상한 몸으로 간직(諫職)에 있으면서 영합(迎合)하기만 하고 입을 다물고서 구차히 자리만 채우고 하는 일 없이 날짜만 보내고 있었으므로 이런 절박한 재변을 만났습니다. (중략) 전하께서 살피시어 고질화된 폐단을 통렬히 개혁하시고 실효가 있도록 힘쓰시고, 엄정(嚴正)하면서도 지성으로 신(神)을 감동시킨다면 재변을 만나 수성(修省)하는 도리에 조금의 도움은 없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로써 무능한 자신들을 질책하고 개혁을 하라고 합니다. 과연 신하들의 상소대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처럼 치솟는 물가에 허덕이는 서민들로서는 400여 년 전 임금에게 개혁을 하라고 상소를 올린 신하들의 목소리가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