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느린 음식” 곧 슬로푸드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사실 한국 전통음식만큼 “느린 음식”도 세계에 드뭅니다. 우리 겨레의 느린 음식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말고도 발효음식인 김치, 젓갈, 막걸리 따위도 있습니다. 한국 전통음식 특히 장은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좋은 음식입니다. “친구와 장맛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지요.
1766년(영조 42) 유중림(柳重臨)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는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다 해도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다. 설혹 시골에 사는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지장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신경을 쓰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된장, 간장, 고추장 따위의 장담그기가 주부들만의 몫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음식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장을 만드는 데는 적어도 5~6달은 걸립니다. 특히 간장은 “아기 배서 담은 장으로 그 아기가 혼인할 때 국수 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 되어야 제맛을 낸다고 하며 60년이 지나 빛깔이 검고 거의 고체처럼 굳은 간장을 최고로 쳤습니다. 간장뿐만 아니라 구수한 된장찌개를 만드는 된장은 이미 항암음식이라 알려질 정도로 훌륭한 음식이지요. 오래 묵은 장맛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던 우리 겨레가 서양음식을 들여다 먹더니 이제 새삼 슬로푸드라는 말을 만들어 버터냄새 나는 호들갑을 떠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