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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대부분 공식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런만큼 당시에는 언문(한글)이 푸대접받았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궁궐 내 대비, 중전을 비롯한 내명부에서는 언문으로 교지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역대 임금 가운데 선조는 공식 문서인 교지에 언문을 사용한 임금으로 꼽힙니다. 선조가 교지를 언문으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임진왜란 때문이었습니다.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왜군이 7백여 척의 배를 앞세워 부산포로 쳐들어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던 조선은 왜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속속들이 관군이 무너졌다는 숨막히는 소식을 들으며 선조는 탄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은 의병이었습니다. 선조실록 25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로 방문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민간을 알아듣게 타이르도록 하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문이 아닌 언서(한글)로 교지를 내린 까닭은 백성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임진왜란 당시 백성의 상당수가 언문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