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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190. 비석에는 단 한자도 글씨를 새기지 마라

   

38년 동안이나 벼슬살이를 하며 집 한 칸을 장만하지 못했다고 하면 곧이들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조선 중기 때 문신 박수량(朴守良:1491∼1554)은 평생 집 한 칸은커녕 그가 죽었을 때 남은 양식이 없어 초상마저 치를 수 없었을 만큼 청렴결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벼슬을 하며 가는 곳마다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학자로도 존경받았을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기로도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한번은 늙은 어머니를 모시려고 나주 목사를 자청하였는데 삼정승이 나서서 "대사간을 맡을 사람이 목사를 자청하느냐?"라며 만류하기까지 했지요. 어머니를 곁에 모실 수 있는 목사자리를 고집하면서까지 자기 영달을 접는 박수량의 효심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 그가 서울 벼슬살이 끝에 죽자 대사헌 윤춘년이 "박수량은 청백한 사람이라 멀리 서울에 와서 벼슬을 하면서도 남의 집을 빌려 살고 있었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장성으로 돌려보내 장사지내려고 해도 지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를 나라에서 표창해야 합니다."라고 임금에게 올리자 명종 임금은 서해의 좋은 돌을 골라 비석을 세우되 비석에는 단 한 글자도 쓰지 말도록 했지요. 구구절절이 비석을 채우기보다는 그의 맑은 덕을 기리는 뜻에서 비석을 백비(白碑)로 세우게 했는데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있다 해서 금호리백비(金狐里白碑, 전남 기념물 제198호)로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