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때때로 불며 누른 잎새가 우수수하고 떨어지든 가을철도 거의 다 지내가고 새빨갓케 언 손으로 두 귀를 가리고 종종 거름을 칠 겨울도 몃날이 못되야 또다시 오게 되얏다. 따듯한 온돌 안에서 쪽각 유리를 무친 미닫이에 올골을 대이고 소리 업시 날리는 백설을 구경할 때가 머지 아니하야 요사이는 길가나 공동수도에 모히어 살림이야기를 하는 녀인네 사이에는 ‘우리 집에는 이때까지 솜 한 가지를 못 피어 놓았는데 이를 엇지해….’ 하며 오나가나 겨울준비에 분망하게 되었다.”
위는 <立冬과 沈菜準備>라는 제목의 1922년 11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일부입니다. 당시의 입동 즈음 분위기를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인 입동입니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놓고 한숨 돌리고 싶지만 곧바로 닥쳐올 겨울 채비 때문에 아낙네들은 걱정 속에 일손이 바빠집니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지요. 지금은 배추를 비롯한 각종 푸성귀를 365일 팔고 있고 김치 말고도 먹을거리가 풍요롭지만 예전에 겨울 반찬은 김치가 전부이다시피 했으며 김장하기는 우리 겨레의 중요한 행사로 그 전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입동철에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따위의 일들로 몹시 바빴습니다. 특히 감나무의 감을 딸 때는 날짐승을 위해 감 몇 개를 남겨놓을 줄 아는 여유도 잊지 않았습니다. 또 입을거리가 넉넉지 않았으므로 솜을 두둑이 깔아 누비옷을 만들고 솜을 틀어 두툼한 이불도 마련해야 했는데, 이런 겨울채비를 바삐 하다보면 겨울도 성큼 다가서게 되지요.
*沈菜(침채) : 언제 펴낸 지 모르는 옛 요리책인 ≪주방문(酒方文)≫에는 김치를 “침채(沈菜)”라고 쓰고 있으며 한글 표기는 ‘지히’라고 썼다. 김치(딤채)는 침채에서 생겨난 낱말로 푸성귀를 소금물에 절인다는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