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학에 들어갈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예전에는 시험날만 되면 으레 한파로 고생이었으나 시험 날짜를 11월로 옮기고 나니 날씨 걱정은 한시름 놓입니다. 온 나라가 출근시간까지 늦추며 수학능력고사를 치르는 요즈음과 달리 조선시대엔 국가적인 시험으로 과거가 있었지요.
과거 시험 말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글솜씨를 겨루는 백일장(白日場)도 있었는데 당시에 유생(儒生)들을 모아 시제(試題)를 내걸고, 즉석에서 시문을 짓게 하여 장원(壯元)을 뽑아 연회를 베풀고 상을 주었습니다. 벼슬길과는 관계가 없는 백일장은 과거(科擧)낙방생과 과거지망생의 명예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지요. 조선 후기에는 일자무식꾼까지도 참가하여 남의 글을 표절하기도 하고, 시험지 심사에 기생까지도 관여하여 엉터리로 등급을 정하거나 수령을 욕하는 글을 썼다가 포박되는 따위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백일장은 지난 50~60년대만 해도 성행하였지요. 1959년 10월 31일 자 동아일보에는 “異彩! 두 女流도, 과거 방불ㆍ백일장대회”라는 기사가 눈에 뜨입니다. 기사에 보면 82살의 노인부터 17살 청소년까지 참가했는데 두 여성이 참가하여 한층 이채로웠다고 쓰여 있습니다. 모두 94명이 참가한 대회에 여성이 겨우 두 명이었음을 보면 이때만 해도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지요. 당시 반공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어서 시제를 “반공”으로 내걸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