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장인이 오랫동안 공들여 / 귀신의 솜씨인 양 조각했구나 / 대나무 곁에 매화는 피려 하고 / 구름 찌르며 학은 함께 난다 / 맑은 물결은 잔잔하게 자고 / 푸른 산은 가까운데도 희미해라 / 묵객들이 어루만진 지 오래이니 / 몇 번이나 붓 휘둘러 시를 지었을꼬” 이 시는 조선 중기 선비 이응희 (李應禧, 1579~1651)가 지은 “硯刻梅竹雲鶴山水”라는 시로 벼루에 매화ㆍ대나무ㆍ구름ㆍ학ㆍ산ㆍ물을 새겨 놓았다는 내용입니다.
이응희는 경기도 군포 수리산(修理山) 아래에서 숨어 살면서 학문에 전념했던 사람이지요. 조선시대 선비들이 거처하던 사랑방에는 서안(책을 얹는 재래식 책상), 고비, 책장, 사방탁자, 문갑과 함께 붓, 벼루, 먹, 종이, 문진, 연적, 연갑(硯匣, 벼룻집), 필가(붓을 걸어 놓는 기구), 필세(붓을 빠는 그릇), 필통, 향꽂이, 차도구 따위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벼루는 ‘석우(石友)’라고 해서 선비들이 중요시 했는데 선물로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한국 벼루는 조선 세종부터 성종 시기의 문예 부흥기에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숙종부터 영조, 정조에 이르는 풍요로운 안정기에 매우 다양한 무늬와 형식의 고급벼루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평생 벼루 열 개를 달아 없앤 추사 김정희 역시 벼루와 각별한 정을 나누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