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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213. 품안의 아기를 빼앗겨도 불굴의지 꺾지 않은 이애라 여사

   

“1919년 31독립만세 때 애국부인회를 지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여사는 아이를 빼앗겼고 결국 아이는 헌병이 내동냉이쳐 죽었지만 여사의 독립운동 의지는 꺾을 수가 없었다. 이후 남편이 있는 시베리아로 밀행하다가 왜경에게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애국지사 이애라 여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충남 아산에 있는 이애라 애국지사 집안의 충국순의비(충혼탑)를 찾아 나선 날은 찬바람이 볼을 스치던 11월 말이었습니다. 충혼탑 소재지가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까지만 나와 있고 번지수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워낙 유명한 독립운동 집안 인지라 동네 어귀쯤 가면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김 씨 찾는 꼴이었으니까요. 묻고 묻길 수십 차례 끝에 간신히 마을 이장님을 찾아 안내를 받았습니다.

숨이 약간 가쁘다고 생각할 즈음해서 산마루에 다다랐는데 그곳에는 독립운동가인 남편 이규갑 애국지사를 비롯한 여러 가족의 무덤이 있었습니다만 이애라 여사의 무덤은 없었습니다. 이애라 여사는 1921년 블라디보스톡에서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였는데 이때 유해를 거두지 못해 끝내 조국의 선영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지요. 문중 무덤 앞자리에는 애국의 본보기인 시어머니 박안라 여사를 비롯한 이애라 애국지사 집안의 독립운동이야기를 전하는 충혼비만이 말없이 오롯이 서서 선영을 찾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