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 컵이었어 / 색도 어쩌면 꼭 그런 색이었는지 / 노랗든지 밤색이든지 아니면 흰색이든지 / 이것저것 반반씩 섞다 만 색 / 오! 그 얄궂은 컵들이 / 어미닭 주변에 병아리 모이듯 / 누런 주전자 곁에 / 꼭 그렇게 모여 있었어. -그 컵이 있던 자리 ‘이고야’-
흑판 옆에는 어느 반에나 똑같은 크기의 나무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손으로 짠 촌스런 테이블보가 삐딱하게 덮여 있었습니다. 찌그러진 양은 쟁반이 그 위에 놓여 있었고 그리고 다시 그 위에는 빛바랜 누런 주전자와 그 얄궂은 컵이 있었지요. 그것이 60~70년대 학생들의 교실이었습니다.
“박학규 선생은 일본대학 고등사범 지력과(地歷科)를 마추신 이로, 지금 지리, 조선어, 습자를 가르치시고 이선호(李善浩) 선생은 경성고등상업을 마치시고 부기, 상산(商算), 기하를 가르치시고, 박인호 선생은 동경여자고등상업학교를 마추시고 주산, 타자를 가르치시고….” 삼천리 제10권 제5호 (1938.5.1)에는 인왕산 서쪽 비탈에 자리 잡은 경성여자상업학교를 찾아간 기자가 학교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30년대 타자교실이나 70년대 타자 교실이 큰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생활사박물관에서나 만나게 되는 물건들이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