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라고 하면 “아! 북한의 대남 선전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일 것이다. “삐라”라는 말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는 말과 같고 한반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정서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벽을 아우르지 못하고 같은 겨레가 총부리를 겨누는 바람에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야 했던 전쟁이 6.25라 부르는 한국전쟁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겨레는 그 참혹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아직도 진행형으로 서로 감시하고 서로 못 미더워한다. 비극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삐라”는 그런 시대의 유물이요, ‘삐라를 보면 즉시 신고하자.’는 말 역시 그 시대에 흔히 듣던 구호이다. 당시 공산당을 얼마나 나쁜 놈들로 생각했는지는 그 시대 우리의 미술 시간을 더듬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스케치북 하나 가득 머리에 뿔이 서너 개나 달린 공산당 얼굴을 그리느라 바빴다. 미술 시간이면 으레 ‘삐라 신고하라’든가 ‘반공방첩만이 살길이다.’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 ‘간첩은 당신을 노리고 있다.’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한국에 피카소 같은 작가가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미술교육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북한에서 대량 살포하던 “불온삐라”는 거의 사라진 듯한데 지금은 거꾸로 남한에서 ‘불쌍한 북한 동포’를 위한다는 구호 아래 ‘남한산 삐라’를 휴전선 부근에서 커다란 고무풍선으로 날린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차피 그것들은 구원의 메시지는 되지 못하고 하나의 “삐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삐라”라는 말은 영어의 ‘bill’을 일본사람들이 ‘삐라’로 발음 한 것을 한국에서 들여다 ‘불온전단’으로 여기게 된 말이다. 이런 말로는 '기계'를 뜻하는 영어의 ‘machine’을 일본사람들이 ‘미싱’이라 한 것을 ‘재봉틀’로 여기고 들여다가 천연덕스럽게 쓰는 것과 같은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