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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에서 임금이 부르시던 날 紫極承恩日
누런 꽃을 술에 띄어 놓았네. 黃花泛酒時
이제 대 여섯 친척과 함께 모여 一堂親五六
태평세월을 지내자고 기약하네. 同樂太平期
위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 선조 8년(1574) 중양절에 친지, 식구들과 함께 잔치를 하면서 읊은 시입니다. 을사사화로 십 수 년 귀양살이를 한 그가 이제 평안하게 말년을 지내니 감회가 새로워 쓴 것입니다. 미암은 16세기 후반 사회상을 특히 선비들의 세상살이를 잘 알게 하는 미암일기(보물 제260호)를 남겼는데 조선시대 일기의 백미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미암의 시에 뛰어난 여류시인이었던 그의 부인 송덕봉이 화답하는 시를 짓습니다.
지난날 남과 북으로 갈리었을 때
어찌 이런 날이 있을 줄 알았겠소.
맑은 가을 좋은 시절에 만나니
천리길이라도 함께 하기를 기약합니다.
역시 미암의 부인도 귀양에서 풀린 남편을 맞아 기쁨을 노래합니다. 오늘은 24절기의 하나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며, 명절의 하나인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입니다. 중양절은 양수 9가 두 번 겹친 날로 우리 겨레는 이날을 명절로 지냈습니다. 중구일(重九日)이라고도 부르는 중양절의 세시풍속으로는 “등고(登高)”가 있지요. 등고란 산수유 열매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산에 올라가 국화전을 먹고 국화주를 마시며 즐기는 풍습입니다. 이 세시풍속은 조선말기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역시 조선말기의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국화주 마실 데 어디 없을까요?